서울 도심 한복판, 대표적인 국가 지정문화재인 경복궁에서 불과 50m 정도 떨어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는 사고 자체도 문제지만 우리 사회의 조급증과 성과주의 등 치부를 다시금 드러냈다. 지하 작업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 4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친 이번 사고의 일차적인 원인은 인화물질 안전관리 소홀과 방재 설비 미비 등 현장의 안전불감증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무리한 공기 단축이 사고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기 단축의 이유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 마무리를 위한 것이라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2009년 1월 15일 이 대통령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조성계획을 발표하고, 같은 날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완공 시점을 2012년으로 밝힐 때부터 이런 우려가 많았다. 실제 조선시대 종친부 터의 유적 발굴조사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설계 당선작이 발표됐다. 심지어 설계자조차 "절차를 늦춰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4년은 잡아야 할 공사인데 20개월 내 완공은 말이 안 된다"는 심의책임자의 지적도 소용이 없었다. 정권의 생색내기가 유례없는 속도전과 돌관(突貫)공사를 강요한 셈이다.
유럽에는 수십 년, 수백 년 걸려 지은 건축물들이 허다하다. 건축물을 짓기에 앞서 깊이 생각하고, 착공하면 시일이 얼마가 걸리든 완벽하게 공사를 마무리한다. 그러니 수백 년을 사용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이번 화재 현장에 들어서는 건물은 오피스텔도 상가도 아닌 어엿한 국립미술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경기도 과천시 한갓진 곳에 있어 접근성을 좋게 해달라는 문화예술인들의 오랜 바램의 결실이다. 도심 한가운데 들어서는 국립미술관인 만큼 문화와 예술이 깃든 명소로서의 기능을 갖춰야 한다. 그런 건축물을 밤샘작업을 해가며 불과 20개월 만에 완공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천박하고 부끄럽다. 이제부터라도 예정된 준공 기일에 연연하지 말고 부족하거나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 종합적인 진단과 점검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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