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내 문화쉼터. 50여명의 시민들이 이윤옥 시인의 광복절 기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시를 읽어 내려갔다.
이들 중엔 모시소재의 개량한복을 입은 한 여인의 모습이 도드라졌다. 가족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본인 또한 독립지사였던 오희옥(86)씨다. 그는 '용인의 딸 루저우 열네 살 독립군 오희옥'이라는 시 제목의 구절을 읽어 내려가며 감회에 젖는 듯 했다.
오씨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열네 살이 어린 나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당시엔 독립운동을 하던 또래 소녀들이 많았다"며 "두 살 터울 언니와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 들어가서 부모님을 따라 열심히 활동했던 게 엊그제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붓글씨로 쓴 안중근 의사의 글 '국가안위노심초사 견리사의견위수명(國家安危勞心焦思 見利思義見危授命)'을 보여주며 "항상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던 안 의사처럼 독립운동가들도 오직 나라만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우리 집안처럼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이를 숨기고 산 후손들이 적지 않아.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잘 살아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해 안타까워."
오씨의 집안은 경기 용인에서 독립운동가문으로 유명하다.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은 경기도 일대를 주름잡았던 명포수로,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의병활동에 앞장섰다. 아버지 오광선 장군도 만주로 망명해 무장독립운동 단체의 제1대대 중대장으로 활약하는 등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다. 부창부수일까. 어머니 정현숙씨 역시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했으며, 언니 오희영과 형부 신송식도 부부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이런 가족 내력을 그대로 이어 받은 오씨는 중국 지린성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39년 언니와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일본군의 정보수집과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 탈출을 도왔다. 항일연극·무용 등을 하며 대원들의 사기 진작과 우리의 독립의지를 중국에 전하는 데에도 힘을 보탰다.
구순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정정한 그는 지금도 독립운동의 의미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경기 수원의 보훈복지타운에 살지만 서울 합정동에 있는 한국독립유공자협회나 용산기념관 같은 여러 광복 관련 단체와 시설을 드나들고 있어.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잊어선 안 되기 때문이지. 기념일에만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지 말고 평소에도 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글·사진=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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