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을 남발하는 청구인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른 청구인의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우려와 함께 헌법소원 청구권을 일정 부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청구권 제한은 기본권 침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13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시민단체 활동가인 A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 100여건의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30여 건 정도가 지정재판부를 거쳐 전원재판부에 회부됐으며 나머지는 모두 각하됐다. 헌재 관계자는 "A씨 뿐 아니라, 최근 들어 기각이나 각하가 뻔한 사안을 가지고 반복해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사례가 눈에 띄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모델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대표적인 예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580여건의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모두 각하됐다.
헌재는 헌법소원 남발을 지난 2010년부터 시행한 전자접수 도입 때문으로 보고 있다. 헌재를 오가는 번거로움 없이 간편하게 인터넷을 통한 접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헌재의 심판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돼 있고, 변호사 비용도 국선대리인 신청제도를 통하면 되는 등 소송 비용이 특별히 들지 않는다는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헌재는 특정인의 헌법소원 남발이 다른 청구인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헌법소원이 제기되면 일차적으로 3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가 일일이 부적법 여부를 검토해 각하 여부와 전원재판부로의 이송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헌재 연구관은 "인용 가능성이 없는, 각하나 기각이 뻔한 사건을 일일이 판단하는 건 결국 헌재의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선대리인 인력 낭비도 문제다. 헌법소원 청구 사건이 전원재판부로 넘어갈 경우 청구인은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돼 있다. 이 경우 국선대리인 신청이 가능하다. 60여명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헌재 국선대리인의 한정된 인력을 고려할 때 특정인의 헌법소원 남발에 매번 국선대리인이 배정된다면 그만큼 일반인이 헌법소원 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 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가가 60만~200만원을 부담하는 국선대리인 비용도 낭비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헌재 안팎에서는 법원처럼 인지대를 신설하는 등 헌법소원 남발 방지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 헌재는 국민의 헌법소원 청구권을 제한한다는 위헌성 논란 때문에 무산되기는 했지만, 헌법소원을 제기할 때 일정 금액을 내도록 하는 공탁금 납부제도를 추진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헌법소원을 남발하는 청구인 목록을 만들어 관리하는 미국 제도를 참조하자는 등 여러 얘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제한 문제가 크기 때문에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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