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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로 분양받은 집값 폭락에… 입주 예정자 줄줄이 집단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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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로 분양받은 집값 폭락에… 입주 예정자 줄줄이 집단소송

입력
2012.08.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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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TI 적용 받지 않는 집단대출 '부메랑'

"분양계약해제소송에서 건설사를 압박하기 위해선 그 돈줄을 쥐고 있는 대출 은행들을 대상으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반드시 같이 해줘야 합니다."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 예정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집단소송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집값이 오를 줄 알고 빚을 내 새 아파트를 분양 받은 사람들이 부동산가격이 폭락하자 시공업체에 계약해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집단대출을 해준 은행에는 갚을 빚이 없다는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 등 4개 시중은행이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과 중도금대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진행하는 단지(사업장)는 27곳에 이른다. 주택경기가 괜찮았던 2008년엔 관련 소송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소송 건수와 부동산 경기가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 가격이 조정을 받기 시작한 2009년과 2010년 각각 4개 사업장에서 소송이 제기됐고, 하락폭이 커진 지난해엔 소송전이 17곳으로 확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10개 단지의 계약자들이 소송을 냈다. 한 단지에서 여러 건의 집단소송이 제기된 경우도 있는 걸 감안하면 실제 소송은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분쟁의 중심엔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을 받지 않는 집단대출이 있다. 집단대출은 은행이 새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분양 받은 사람에게 개별 심사 없이 일괄적으로 중도금 등을 빌려주는 제도로, DTI 규제와도 무관하다. 상환능력이 안 되는 계약자라도 입주 시점에 가격이 오른 집을 되팔아 은행에 갚으면 되는 구조여서 부동산 활황기엔 전혀 문제가 안됐다.

그러나 지금처럼 분양가 밑으로 가격이 떨어지면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동안은 신도시 아파트 가격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올라 집단대출이 자산 증식에 큰 도움이 됐지만, 최근 몇 년 새 주택시장이 침체되면서 되레 빚 수렁으로 빠지는 블랙홀이 된 것이다.

이는 집단소송이 주로 경기 김포ㆍ일산, 인천 청라ㆍ영종도 등 최근 가격 하락폭이 컸던 신도시에서 봇물을 이루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인천 경서동 청라지구 동문굿모닝힐(전용 141.61㎡)의 경우 2009년 1월 분양 당시 4억7,540만원에서 현재 3억9,040만원으로 17.9%나 떨어졌다. 다른 단지도 대부분 5(청라롯데캐슬ㆍ159.11㎡)~10%(반도유보라2차ㆍ130.97㎡) 하락했다. 김은진 부동산114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초 정부의 부동산세제 완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반짝 상승하던 시기에 분양 받은 아파트들의 하락폭이 특히 크다"고 분석했다.

DTI 적용을 받지 않는 집단대출을 통해 아파트를 분양 받은 사람들이 집값 급락으로 큰 손실을 보자 건설사를 상대로 분양계약해제소송을 벌이게 됐고, 그 과정에서 대출을 해준 은행을 상대로 돈을 갚을 이유가 없다는 소송을 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송전은 은행과 고객, 건설사 모두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은행들은 연체율 비상이 걸렸다. 작년 말 1.18%였던 집단대출 연체율은 올해 5월 말 1.71%로 치솟았다. 주택대출 평균 연체율(0.85%)의 두 배를 넘는다. 집단소송이 늘어날수록 관련 연체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집단대출의 보증을 섰던 건설사들 역시 건설시장 침체에 따른 구조조정 압박에다 소송까지 겹쳐 부실화 위험이 더 커졌다. 입주 예정자들도 소송에서 지면 엄청나게 불어난 연체이자를 한꺼번에 부담해야 하는데, 자발적으로 대출을 받은 이상 은행에 이길 가능성이 희박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 이길 가능성 희박한데 소송 러시… 왜?

작년 말 완공된 경기 김포 한강신도시 W아파트. 아직껏 계약자 절반이 입주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시공회사와 중도금대출 은행을 상대로 분양대금반환 및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냈다. 소송 가구당 중도금과 잔금연체 규모는 평균 4억5,000만원. 이제 1심이 진행 중이라 승패를 떠나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소송 인원은 4,190명, 소송금액은 5,000억원. 집단대출 관련 인터넷 카페의 움직임을 감안하면 관련 소송은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몇 년이 걸려도 대법원까지 가자", "우리에겐 20곳 이상 관련 소송을 맡은 유명 변호사가 있다" 등 자문을 거쳐 언제든 소송에 뛰어들 태세다. 전문 브로커가 등장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설상가상 소송 급증의 방아쇠 역할을 한 부동산 경기는 살아날 기미조차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승소 확률이 희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통 분양계약해제소송과 함께 진행되는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은 적어도 2년 이상 걸리는데, 지난해 4개 단지에서 벌어진 관련 소송에서 계약자가 모두 진 것으로 알려졌다.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은 기반시설 미비 등으로 분양계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분양계약해제) 그에 따른 은행대출 역시 계약자가 아닌 건설회사가 떠안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차피 질 싸움이 뻔한데도 소송에 뛰어드는 건 당장의 빚더미를 모면하려는 심리와 집값 하락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억울함 탓이다. 실제 채무자의 연체정보 등록은 확정판결 전까지 미뤄져 소송 중엔 연체를 해도 신용등급이나 금융거래에 불이익이 없다.

문제는 패소할 경우다. 연체한 시점부터 소급해서 연체이자(연 20%대)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몇 년 뒤엔 부담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져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당장 눈앞의 급한 불을 끄려다 가계 전체를 태울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소송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근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안내하도록 시중은행 창구 지도에 나선 것도 사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20~30대 "빚내서 집 사면 하우스푸어 될 텐데…"

"전세로 살면 되지, 왜 빚까지 내 하우스푸어가 돼야 하나요."

중견기업 차장으로 근무 중인 김철훈(39)씨는 '대전족'(대치동 전세족) 생활 5년째다. 자녀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는 지난해 4억5,000만원 전세로 계약했다.

강남권 집값이 많이 떨어져 3억원가량 대출을 받으면 32평형 아파트 매입이 가능하지만, 굳이 내 집을 마련할 생각은 없다. 그는 여유자금도 내 집 마련을 위한 청약저축보다는 주식형 펀드나 비과세 적금으로 굴리고 있다. 그는 "집 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빚으로 집을 장만하면 하우스푸어가 될게 뻔하다"면서 "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한다고 해서 집을 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정부가 빈사 상태에 놓인 부동산거래 활성화를 위해 20, 30대 직장인들의 DTI 완화를 검토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내 집 마련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차라리 교육여건이 뛰어난 지역의 전셋집에 살면서 여유자금을 취미 활동과 노후 대비에 쓰겠다는 생각이다.

12월 결혼을 앞둔 김모(34)씨도 부모 지원에다 약간의 대출을 받으면 20평형대 아파트 구입이 가능하지만, 직장에서 가까운 서울 구로구의 84㎡ 규모 아파트를 전세로 구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전ㆍ월세 생활에 익숙해진데다 재테크 차원에서도 내 집을 장만할 생각이 없다. "이제 아파트는 투자가치가 없는 데다 은행에 매월 빚을 갚아가며 빠듯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그는 "젊은 층을 위한다면 DTI 완화보다는 장기임대주택이나 저리의 전세대출을 늘려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20, 30대 젊은 층은 렌털하우스에 익숙한 세대다. 올해 초 부동산114의 설문조사에서도 30대 연령층의 87%는 '집을 살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집을 구입하는 건 손해라는 생각이 강한 것이다.

은행권도 젊은 층의 DTI 완화를 부담스러워 하는 입장이다. 20, 30대의 현재 신용만으로 대출을 늘려주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A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안정적인 직장이 있지만, 미래에 직장을 그만둘지 또 소득이 줄지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설령 DTI를 완화해 대출 규모를 늘려주더라도 부동산시장이 침체된 상황이라 수요도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20, 30대 직장인에 대한 DTI 완화가 부동산거래 활성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의철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구입은 기본적으로 투자의 개념이 동반되는 것이어서 기회비용 정도는 충당돼야 거래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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