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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엔… 납세자 의무만 있고 권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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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엔… 납세자 의무만 있고 권한은 없다?

입력
2012.08.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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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영업자 A씨는 최근 관할 세무서에서 '4년 전 신고ㆍ납부한 양도소득세가 실제보다 적게 계산됐으니 500만원을 더 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세무당국이 납세자의 신고내용 중 잘못된 부분을 5년 안에 발견하면, 그 수정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비슷한 시기에 부가가치세를 100만원 가량 더 낸 걸 발견했다. 그러나 납세자는 경정청구기한(3년)이 지나면 수정을 요구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국가에 비해 훨씬 불리한 납세자의 권리를 깨닫게 됐다.

#. 사업가 B씨는 최근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세무당국의 움직임을 전해 듣고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역시 사업을 하는 친구에게서 '올해 경기가 나빠져 세금이 예상만큼 걷히지 않으면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세무조사가 늘어난다'는 경고를 들은 것이다. B씨는 '세무당국이 자의적으로 세무조사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여기면서도, 만약에 대비해 각종 장부와 매출전표 등을 점검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나라 곳간에 비상이 걸렸는데 복지수요는 날로 증가하는 탓일까. 정부가 납세자의 권리 강화에는 귀를 닫은 채 세법상의 징세권한 강화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발표한 세법개정안에 맞춰 국세기본법과 국세징수법 개정안 등을 입법 예고했는데, 과세ㆍ징세 당국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행정 처리를 수월하게 만드는 조항이 대거 포함됐다. 이 중에는 세법개정안에 소개되지 않은 내용도 일부 포함됐다.

우선 정부는 내년부터 탈세제보자에 대한 포상금을 '최고 1억원'에서 '최고 5억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5억원 이상 체납 국세는 재산을 압류해야만 조세채권 효력이 소멸되지 않지만, 앞으로는 시효 소멸 3개월 전 독촉장만 다시 보내도 시효가 중단되도록 했다. 또 국세보다 순위가 앞선 채권과 체납처분비가 재산 가액보다 많으면 세무서가 그 처분을 중지하는 게 원칙이었으나, 내년부터는 추가 징수 가능성에 대비해 처분을 유지토록 바꿨다.

반면 납세자 권한을 강화하는 노력은 등한시하는 게 현실이다. 경정청구기한의 연장(A씨 사례)이 대표적이다. 국가는 정상 납부한 5년 전(고의로 속이면 10년 전) 세금에 대해서도 잘못이 발견되면 추징할 수 있지만 납세자는 3년 이전에 낸 잘못된 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한 세무 관계자는 "이 조항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수 년 전부터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가 이번에도 이를 외면했다"고 말했다.

경기가 나빠져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으면 당국이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기업이나 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세무조사 운영실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세수진도비(당초 계획대비 실제 징수액의 비율)가 낮아지면 세무조사 빈도가 높아지고 추징 금액도 높아졌다. 세수진도비가 낮아진 2002년, 2004년, 2005년에는 법인세 조사 비율이 늘어났으며, 거꾸로 1995년, 2000년, 2003년, 2008년에는 세수진도비가 호조를 보이면서 세무조사 비율이 약화했다.

예산정책처는 "세무조사의 재량성이 높아지면 조세행정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며, 경기 악화 상황에서 당국이 징세 수준을 강화하면 부진 상황이 더욱 악화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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