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강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공룡' 아르셀로미탈(이하 미탈)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6년 간 글로벌 철강왕좌를 굳건히 해 온 미탈이지만 유럽 재정위기에 휩쓸리면서 핵심 철강자산까지 팔아 치우고 있어, 일각에선 '미탈 시대의 끝이 보인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탈은 지난 2006년 세계 1위의 인도계 철강회사 미탈이 세계 2위였던 룩셈부르크 아르셀로철강과 합치면서 탄생한 부동의 세계1위 철강사. 호황기였던 2008년에는 연간 조강생산량 1억톤을 가뿐히 넘기며 타 업체들을 2~3배의 압도적인 격차로 따돌렸다. 작년에도 미탈은 9,720만톤을 생산해 2위인 중국 허베이스틸(4,440만톤)를 더블스코어로 앞질렀다.
하지만 유럽에 기반한 미탈은 재정위기의 태풍권에 놓이면서 매출이 줄어들고 있고, 무엇보다 차입금상환을 위해 핵심자산을 속속 매각하고 있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탈은 작년 하반기부터 빌린 돈을 상환하기 위해 무려 22억2,300만달러 어치의 자산을 처분했다. 지난 6월에는 철강서비스를 담당하는 스카이라인스틸과 관련 자회사를 6억500만달러에 미국 철강업체 누코르에 넘겼고, 앞서 5월에는 룩셈부르크 전력회사 에노보스의 주식 23.48%를 팔아 4억2,900만달러의 현금을 확보했다.
그 결과 미탈의 부채비율은 2009년 105%에서 올 1분기에는 96.2%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영업이익확대 아닌 자산 매각, 그것도 본업인 철강자산 매각에 따른 재무구조개선이어서, 중장기적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부채비율 개선에도 불구하고, 현금창출 능력의 가늠자인 영업이익은 급락하는 추세다. 미탈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전년 동기의 절반에 불과한 2.9%에 그쳤다. 영업이익은 6억6,000만달러, 순금융비용은 8억1,000만달러로, 물건을 팔아 이자조차 제대로 충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탈은 유럽과 미국 내 철강부문 추가매각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탈은 현재 33~35%의 주식을 보유한 독일 DHS, 스페인 자동차부품회사 게스탐프 등의 지분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락시미 미탈(사진) CEO도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유럽의 철강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다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유럽 내 생산시설의 추가 폐쇄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시장에선 차입금을 통한 연쇄적 M&A를 통해 몸집을 불려온 미탈의 전략 자체가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89년 트리니나드토바고의 한 중소철강사를 인수하면서 M&A 시장에 발을 내민 미탈은 이후 매물로 나온 철강사를 족족 집어 삼키면서 거대공룡으로 도약했다. 직접 제철소를 짓지 않고 노후제철소를 사들이다 보니, 생산성이나 원가 측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구조적 문제점이 유럽위기가 터지면서 한꺼번에 노출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현재 미탈이 보유 중인 35개 용광로 가운데 23개만 가동 중인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미탈의 성공은 1970년 이후 세계 철강경기가 지속적인 성장을 해온 덕분에 가능했다"면서 "미탈식의 몸집불리기 경영은 한계에 봉착했으며 유럽위기가 길어지면 세계철강업계에 큰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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