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복서'의 고공행진이 우크라이나의 벽에 막혔다.
한순철(28ㆍ서울시청)은 12일(한국시간) 엑셀 런던 사우스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 복싱 라이트급(60㎏) 결승에서 바실 로마첸코(24ㆍ우크라이나)에게 9-19로 판정패했다. 이로써 한국의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24년 만의 복싱 금메달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순철은 96년 애틀랜타올림픽의 이승배 대표팀 감독 이후 16년 만에 올림픽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한순철은 두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 도전이 될 수 있는 이번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가슴 뭉클한 인간 드라마를 써냈다.
속초중 2년 때 체육 교사의 권유로 글러브를 꼈던 한순철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교 때부터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자동차 정비 일을 하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것.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시청에 입단했던 한순철은 오직 자신 하나만 바라보던 어머니를 위해 주먹을 갈고 닦았다. 그리고 그는 22세의 대학생 아내와 두 살배기 딸을 둬 반드시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야 했다. 만약 한순철이 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군 입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로 인해 이승배 감독이 한순철이 힘들어할 때마다 딸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강하게 채찍질했다. 본인도 체중 조절 실패로 좌절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아시안게임의 아픔을 만회하기 위해 이를 꽉 다물었다. 고된 훈련을 묵묵히 이겨낸 한순철은 목숨을 건 채 링에 올랐고, 세계 19위에 불과하지만 쟁쟁한 메달 후보들을 차례로 꺾으며 결승까지 올라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초반에 너무 많은 안면 공격을 허용한 게 패인이었다. 한순철은 1라운에서 원 투 스트레이트 계속해서 헌납해 2-7로 끌려갔다. 2라운드부터 반격을 시작했지만 좀처럼 먹혀 들지 않았다. 팬들의 환호성에 힘을 내 펀치를 날렸지만 5-11로 뒤진 채 2라운드를 마감했다. 사력을 다해 싸운 한순철은 결국 점수를 만회하지 못하고 9-19로 판정패를 당했다.
한순철은 세계 2위 로마첸코의 상대 전적에서 3전 전패를 기록하게 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페더급(57㎏)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로마첸코는 우크라이나의 영웅이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는 체급을 바꿔 라이트급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냈다.
이로써 두 체급에 출전한 한국 복싱은 은메달 1개를 획득하면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세계 1위 신종훈(인천시청)은 조기 탈락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런던=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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