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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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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6>

입력
2012.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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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의 말이 떨어진 잠시 후에 방문이 살며시 열리며 기녀가 들어와 문가에서 살포시 절을 하고는 아뢴다.

그믐(琴音)이가 손님들께 뵙겠습니다.

하고는 아래로 내려가 한쪽 무릎을 세워 그 위에 두 손을 모으고는 정면을 바라보는데 박삼쇠가 얼른 알고 장구를 끌어다 놓고 채를 잡는다. 청아하고 높은 소리로 올랐다가 차츰 평온함을 회복하는 지름조로 소리가 나온다.

산촌에 밤이 드니 먼데 개 짖어 운다

시비를 열고 보니 하늘이 차고 달이로다

저 개야 공산 잠든 달을 짖어 무삼하리오

천금 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세라

시비를 여지 마라 날 찾을 이 뉘 있으리

밤중만 일편명월이 긔 벗인가 하노라

구름이 무심하단 말이 이리도 허랑하다

중천에 떠 있어 임의로 다니면서

구태여 광명한 날빛을 가려 무삼하리

이러나저러나 이 초옥 편코 좋다

청풍은 오락가락 명월은 들락날락

이 중에 병 없는 이 몸이 자락 깰락 하여라

그야말로 심신이 한가한 가운데 잔잔한 흥이 일어나는데 연못에 잔바람이 스치는 듯 물결이 수면 위로 번져가는 것 같았다. 연이어 그녀는 가야금을 무릎 위에 얹고 몇 번 튕겨보고는 잡가의 정요(情謠) 한 대목을 부른다.

갈까 보다 임 가신 데로

첩 살러 갈까 보다

미투리신짝을 타달탈 끌면서

임을 따라 갈까 보다

어찌 살가나 정든 임 그리워

임이 괄시하더라도

불원천리 갈까 보다

아무래도 임을 위하여

병이 나리외다

앞의 시조창과는 달리 간드러진 가야금과 어울린 소리의 높낮이와 떨림이 가냘프면서도 힘이 있었다. 슬프지만 어떠냐고 항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신통이 소리는 많이 듣지 않았으나 목청이 뛰어난 것쯤은 가슴속에 전해오는 느낌으로 짐작할 수가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박삼쇠가 한마디 하였다.

네 어디에서 그 좋은 소리를 배웠는고?

그믐이는 그냥 미소 짓고 고개를 숙이는데 조대추도 한마디 거들었다.

경서도 소리에 판소리 청을 곁들었구나. 그러니 슬프고 씩씩하네.

추월이 우쭐하여 나섰다.

그믐이가 우리 집에 나온 지 이제 겨우 보름도 못 되었소. 은군자로 서방님 모시다가 저와 동업하자고 꾀어냈지요.

좌중은 모두 풍류를 아는 놀량패들이라 더 이상 지지재재 사연을 묻지 않고 흥이 오른 박삼쇠가 수심가 엮음 가락으로 앞서나간다. 몇 대목씩 부르면서 서로 넘기고 받으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광풍아 불지 마라 송풍낙엽이 다 떨어진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잎이 진다 설워 말며

꽃 진다고 설워 마라

하는데 그믐이가 받아 차고 나선다.

인생 한 번 죽어지면 다시 올 길 만무로구나

황천이라 하는 곳은 사람 사는 인품 범절이

정 좋은가 보더라만

조대추도 얼른 받는다.

악공 불러 노래도 시키며 미동 데려다 다리도 치고

미색 불러 술 부어 마시며 노루장화가 막 많은 곳인지

한 번 가면 영결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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