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가 광복절인 15일 독도의 동도에 '독도 수호 표지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갖기로 했다. 그간 독도에는 여러 가지 표석들이 세워졌지만 논쟁에 휩싸여 철거되거나 아예 빛을 보지 못하는 등 수난이 끊이지 않았다.
12일 경북도에 따르면 현재 독도에는 영토표석 3기와 위령비 7기, 암각서 4기, 접안시설 준공 표시석 1기 등 4종 15기의 표석이 있다. 15일 세워지는 높이 120㎝ 가로 30㎝ 세로 30㎝ 크기의 '독도 수호 표지석'을 더하면 4종 16기가 된다. 충북 보은군에서 나는 검은색의 오석(烏石)으로 제작되는 '독도 수호 표지석'은 앞면에는 한글로 '독도', 뒷면에는 '대한민국'이 새겨지며 건립 위치는 동도의 국기게양대 옆이 것으로 알려졌다.
독도의 표석 중 '고 최종덕 기념비'와 한국산악회 청년들이 세운 표석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독도 최초 주민인 고 최종덕씨 기념사업회와 최씨의 유족들이 독도에 대한 고인의 열정을 기리기 위해 2010년 독도 서도의 옛 문어건조장에 놓아둔 비석은 2011년 6월 중순 제막도 하지 못한 채 독도 앞바다에 수장됐다. 기념사업회 측은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생전에 살던 서도 주민숙소 부근에 작은 비석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울릉군의 철거 요청으로 독도 앞바다에 수장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가로 20㎝ 세로 30㎝ 규모의 이 비석에는 '독도는 내가 지킨다 어부 최종덕'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1953년 한국산악회 청년들이 건립한 직후 일본 측이 독도에 상륙, 철거한 표석은 2005년 광복절에 경북도와 울릉군에 의해 복원됐다 또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 표석에 '독도, 獨島, LIANCOURT(리앙쿠르)'라고 표시된 것이 알려지면서 '리앙쿠르'라는 명칭을 둘러싸고 논쟁이 격화, 복원 3년 만인 2008년 경북도가 철거한 것이다. 리앙쿠르는 1849년 서양 선박으로는 독도를 처음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의 이름으로,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표기하기 전에 중립적 명칭을 사용한다는 핑계로 국제사회에 퍼뜨린 명칭이다.
동도 선착장 왼쪽에 건립된 '독도 조난어민 위령비'는 1950년 6월 건립됐다가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유실된 후 광복 60주년인 2005년 8월 재건됐다. 또 1954년 같은 지점에 세워진 독도의용수비대의 '대한민국 영토표석'도 사라호 태풍으로 기단부가 떨어져나가 콘크리트 등으로 임시 기단을 했다가 2005년 8월 복구하기도 했다.
독도의 영토표석은 1954년 8월 경북도와 독도의용수비대, 2008년 7월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가 세웠다. 위령비는 '독도 조난어민 위령비'와 '독도수호 순직경찰 순국비' 6기가 있다. 암각서는 1954년 6월 독도의용수비대가 경비대 앞에 새긴 '韓國領(한국령)'과 '한국', '울릉군 남면 독도' 등 바위글씨를 새긴 주체와 시기를 알 수 없는 3기가 더 있다. 또 동도 선착장에는 1997년 10월 국토해양부가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라고 새겨놓은 접안시설 준공 표시석이 독도를 찾는 국민들을 맞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독도 전체가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돼있어 문화재청의 형상변경 허가를 받지 않은 비석은 설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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