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 결승전. 멕시코 선수와 마지막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둔 기보배 선수는 곧바로 관중석으로 달려가, 오랜 후원자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과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 부회장은 올림픽 기간 중 양궁경기장을 항상 지켰고, 메달을 딸 때마다 선수 감독과 기쁨을 함께 했다.
12일 폐막한 런던올림픽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선전하면서, 각 종목을 후원했던 대기업들도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런던올림픽에선 대부분의 금메달이 사격 양궁 펜싱 체조 등 비인기 종목에서 수확됐는데, 그 뒤엔 한결같이 대기업들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다.
런던올림픽에서 오랜 후원의 결실을 가장 크게 만끽한 기업은 현대차와 SK, 한화그룹이다. 현대차가 후원해온 양궁은 이번에 금메달 4개 가운데 3개를 따내는 역대 최고성적을 냈다. 현대차와 양궁의 인연은 정몽구 회장에서 시작됐는데, 정 회장은 1985~1997년 대한양궁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정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부회장이 양궁협회장을 맡아 2대에 걸쳐 양궁사랑을 펼치고 있다. 현대차가 27년간 양궁에 지원한 금액은 300억원이 넘으며, 최근 2년 동안에는 무려 47억3,000만원을 쏟아부었다.
런던올림픽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금메달을 선사한 종목은 펜싱. 펜싱은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내며 사상 최고 성적을 냈는데 이런 성공 뒤엔 SK텔레콤의 지원이 있었다. 펜싱협회장도 손길승 SK텔레콤 고문(전 SK그룹회장)이 맡고 있다. SK텔레콤은 또 수영에서 유일한 메달(은 2)을 따낸 박태환 선수를 2007년 6월부터 후원해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가장 애착을 갖고 후원해온 종목은 핸드볼이다. 작년엔 400억원이넘는 돈을 들여 국내 첫 핸드볼 전용경기장을 완공하기도 했다. 비록 메달획득에는 실패했지만 비인기종목의 설움 속에서도 당당히 4강에 진출, 또 한번 '우생순 신화'를 썼다.
사격을 후원해온 한화그룹도 기쁨을 만끽했다. 사격에서 우리나라는 진종오 선수가 2관광에 오르는 등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로 최고 성적을 냈다.
사격에 대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애정은 남다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강초현 선수가 실업팀이 없어 진로가 불투명해지자 갤러리아사격단을 창단했고, 2002년6월부터는 김정 그룹 고문에게 대한사격연맹회장을 맡도록 해 지금까지 80여억원의 발전기금을 지원했다. 수주차 이라크 출장 중이던 김 회장은 이번에 진종오 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공항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포스코는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1985년 대한체조협회장을 맡으면서, 체조와 인연을 맺기 시작해 지금까지 27년간 약 130억원을 지원했다. 현재도 체조협회장을 포스코건설 정동화 부회장이 맡고 있는데, 이번에 양학선 선수가 사상 첫 금메달을 따면서 오랜 후원의 결실을 맺게 됐다.
삼성그룹도 배드민턴(삼성전기), 태권도(에스원), 레슬링ㆍ탁구(삼성생명) 등 비인기종목을 후원하고 있는데, 특히 남자탁구의 선전이 돋보였다. 삼성은 국내 유일의 올림픽 공식후원사이고, 이건희 회장이 IOC위원이기 때문에 개별종목 보다는 올림픽 전체를 지원하는 입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비인기종목을 대기업들이 이렇게 후원하는 건 우리나라 뿐"이라며 "처음엔 정부 요청에 따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됐지만 이젠 총수들이 열정과 애정을 갖고 폭넓은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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