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에 빠져 있는 일요일 오후, 그래도 점심은 먹고 자야지 하고 날 깨우는 사람이 있다면 앞집 아저씨다. 색소폰을 어찌나 힘껏 불어대시는지 청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악몽을 몇 번이나 꾸었는지 모른다. 처음 이사를 올 때 집주인 아줌마도 팁처럼 알려주시긴 했었다.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요, 음악에 음자도 모르면서 빡빡 불어대면 다 예술인 줄 아나, 정말이지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저야 뭐 집을 거의 비우는걸요. 털털한 척 가뿐히 계약서에 도장 꾹 찍은 죄로 버텨온 나날 속에 올림픽 기념 대회라도 참가하시려나, 8월 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들려오는 음정 뒤틀린 '대니 보이'에 날은 덥지, 여자 핸드볼도 졌지, 나는 그만 신발장 서랍 속에서 망치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공연히 못 박을 데도 없는데 못 있던 자리에 못 꽂고 두드려 박기라도 반복해야 울화가 덜 치밀 것 같아서였다. 층간 소음이 이래서 살인을 부르는구나, 절대로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고 살자 결심하는데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아랫집에서 신고가 들어왔다는 거였다. 앞집이랑 마주치기만 해봐, 내가 보청기 사내라고 삿대질 할 거다, 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든 채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벌컥 앞집 문이 열렸다. 모시한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민머리의 할아버지와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오른 나, 할 말은 한다더니 예, 예, 이해합니다, 가 대체 뭐니. 그러고 보면 나는 참 가식적이야.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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