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마다 열리는 올림픽은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되는 장이다. 그 각본 없는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눈물이다. 때로는 기뻐서, 때로는 아쉬워서 승자도 패자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아낸다. 눈물은 4년간 흘린 피와 땀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물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하는 것은 올림픽 뒤에는 4년이라는 기다림의 미학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물을 짚어봤다.
환희
아무도 그가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남자 유도 90㎏이하급에 출전한 송대남(33ㆍ남양주시청)이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경기 후 사제지간이자 동서지간인 정훈 유도 대표팀 감독에게 뛰어가 맞절을 해 큰 감동을 줬다.
송대남은 전성기였던 2010년 무릎연골 파열로 찾아온 시련으로 유도를 포기할 뻔 했지만 그를 다잡은 것은 정 감독이었다. 송대남은 근육량을 늘리고 스테이크 13장을 한 끼 식사로 먹었을 만큼 독하게 체급을 올려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렇게 송대남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금빛 메치기를 성공시켰다.
경기 후 그는 "나는 절대 깜짝 금메달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들 유도선수로 내 나이가 환갑이라고 한다. 선후배들 중에 '그 나이까지 유도하냐, 그만하라'고 비웃는 사람도 많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좋은 결과를 나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쉬움
바벨을 내려놓은 한국 여자 역도의 '간판' 장미란(29ㆍ고양시청)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바벨에 손으로 간접 키스를 한 뒤 관중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끝까지 그를 응원해준 팬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
장미란은 75㎏이상급 용상 3차 시기에서 170㎏의 바벨을 들어올리다 채 버티지 못하고 플랫폼에 떨어뜨렸다. 세계 기록을 다섯 번 경신하며 2000년대 세계 역도계를 평정했던 장미란이 안타깝게 4위에 그치는 순간이었다.
경기장을 빠져 나온 뒤 장미란은 꾹 참았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2010년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팔을 올리기조차 힘든 가운데에서도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며 바벨을 매일 30톤 넘게 들어올린 지옥 훈련이 떠올라 그랬을지 모른다.
장미란은 "아쉬움은 있지만 부상을 입지 않고 끝나서 다행이다"라며 "어떤 선수든 올림픽이 부담스럽고 힘들었지만 이렇게 준비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뜨거운 눈물과 함께 감동을 들어 올렸다.
미안함
한국 사격의 간판 진종오(33ㆍKT)의 마지막 10발 째 총성이 울리고 잠시 후 후배 최영래(30ㆍ경기도청)가 아쉬움에 고개를 떨궜다. 남자 사격 50m 권총 결선에 출전한 최영래는 시종일관 선두를 유지했다. 본선을 569점으로 1위로 통과했던 그는 마지막 한 발 전까지 선두를 지켰고 당시 562점으로 다소 부진했던 진종오는 차분히 순위를 2위까지 끌어올렸다.
운명의 마지막 10발째. 최영래와 진종오는 각각 8.1점과 10.2점을 쏘며 두 선수의 총점 합계가 661.5점과 662.0점으로 뒤바뀌자 둘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진종오는 대회 2관왕 및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기쁨과 함께 후배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최영래는 마지막에 금을 놓친 아쉬움과 메달을 땄다는 후련함에 둘은 한동안 떨어지질 못했다.
억울함
여자 펜싱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 출전한 신아람(26ㆍ계룡시청)은 준결승에서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을 상대로 종료 1초를 남기고 5-5로 맞서고 있었다. 경기 전 추첨을 통해 연장전도 동점으로 끝날 경우 승리한다'는 프리오리테(우선권)를 가진 신아람의 결승 진출이 유력해 보였다.
남은 시간은 단 1초. 그는 하이데만의 거친 공격을 무려 3차례나 막아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다. 4번째 공격을 아쉽게 허용한 신아람은 결국 오심에 울고 말았다. 4년 동안 흘린 땀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 허망한 상황에 그는 그대로 피스트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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