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책꽂이에서 우연히 다시 꺼내 든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에는 참 많은 대목에 밑줄이 쳐 있었다. 색색의 메모 스티커로 책갈피는 너덜너덜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안이라는 우울한 감정의 속내에 강하게 집착했던 것일까. 불안>
아마도 새로운 분야의 취재를 맡고 조바심을 내던 2007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감정상태와 맥이 닿아 있던 불안이라는 제목에 한 번 끌렸고, 첫 번째 불안의 원인을 '사랑결핍'으로 꼽은 목차에 공감했던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의 저작물이 항상 그렇듯 뻔하고 진부해 보이는 이야기를 무척 그럴싸하게 풀었다. 철학, 문학, 종교, 예술 등 방대한 자료를 적재적소에 인용할 수 있는 깊은 내공 덕분이리라. 평범한 일상이 철학적 사유를 통해 보편성을 얻는 과정에 탄복했고, 그런 알랭 드 보통식 글쓰기에 질투가 나기도 했다.
책의 원제는 'Status Anxiety', 즉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풍요 속에서도 불안을 느낀다. 더 많은 돈과 명성, 영향력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사랑의 상징이다. 사랑은 일종의 존중이다. 사랑의 결핍은 우리에게 울화와 무력한 절망감을 안겨 준다. "동료 한 사람이 인사를 건성으로 하기만 해도,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기만 해도 우리 기분이 시커멓게 멍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가 아닌 감정적 상처의 기록"이라는 그의 지적에는 지난 몇 년 간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소위 명품 업계의 성장을 떠올렸다. 어쩌면 나 역시 부정하고 싶지만 그의 말처럼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유명 브랜드의 핸드백을 그렇게 사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를 비롯해 위로와 위안을 콘셉트로 내건 최근의 베스트셀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을 다룬다. 차이점이라면 해법의 제시다. 그는 사랑 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등이 원인이 되는 불안의 감정을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보헤미안들의 사회 또는 집단)의 가치 체계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프니까>
예컨대 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언뜻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이는 소설과 시, 희곡과 회화, 영화 등은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을 더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영적인 세계를 믿는 기독교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도 불안을 떨치는 데 효과가 있다.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면 지위 때문에 나를 사랑하던 사람을 가려내고 격분할 것이다. 결국 조건부 사랑에 흥미를 잃고 지위를 얻든 잃든 지속될 수 있는 관계에 에너지를 집중하게 된다.
최근 '힐링(healing)'도서가 각종 베스트셀러 집계를 점령하면서 문학ㆍ인문서의 관심도가 낮아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라면 풍요의 시대를 살면서도 빈곤감은 커지는 삶에 대한 위안을 받으면서도 인문서의 욕구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을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장 자크 루소, 조지 오웰, 쇼펜하우어, 칼 마르크스 등을 자연스럽게 녹여 낸 글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책을 편안하게 읽으면서도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는 느낌이었다.
독서의 감흥은 언제나 당시 감정 상태와 독특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나타나기 마련일 터. 거의 대부분의 행간에 절대적으로 공감했던 수년 전과 달리 이번에 다시 펼쳐 든 <불안> 은 그래도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의 해법으로 제시한 예술을 일 때문에 매일 접하는 덕분이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한 해 두 해 세월이 흘러가며 매사에 무심해지듯 사랑 결핍에도, 그로 인한 불안에도 둔감해져 버린 탓인 걸까. 불안>
[다시 읽고싶은 책] <검은 고독 흰> 당첨자는 @topol21, @silpidi , @et_flame , @spacestarsky, @kidcar215, @koso3wuri, @slip_banana, @heefeda, @ywc88, @sieun_love10 입니다. 검은>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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