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보다 연필, 볼펜보다 만년필을 즐겨 쓰는 나는 책도 비교적 새 책보다 헌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오죽했으면 대학 입학하여 산 4500원짜리 개정판 발레리 시집을 학교 선배의 700원짜리 초판과 바꿨을까. 그것도 짬뽕에 이과두주를 두 번씩이나 사주면서 말이다.
취향의 문제인지 꺼칠꺼칠한 종이에 활판으로 인쇄가 된 옛 책들 앞에서 뭔가 더 깊은 사유의 통로를 발견한다 싶었던 나는 요즘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인터넷 헌책방을 애용하곤 한다. 특히나 지금은 망하고 없는 출판사의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책들, 우리들 시간이 가거나 말거나 제 시계 속에 여전한 뜨거움으로 살아 있는 책들의 그 연륜을 덥석,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 내가 어떻게 책을 사들이나 가만 보니 일단은 출판사 검색부터 해대는 걸 알았다. 검색 조건에 이 출판사 저 출판사 이름을 무의식적으로 쳐 넣곤 하는데 놀랍게도 매번 그 순서가 엇비슷하더란 얘기다. 좋아한다는 건 다시 말해 신뢰한다는 것, 어떤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든 다 맛있을 거란 기대 속에 밥상 앞에 앉게 하는 엄마처럼 내가 즐겨 찾는 출판사의 힘 또한 그러함을 알았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필자와 새로운 책을 만나고 만들기 위해 길 위에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다는 착각으로 내일로 모레로 계속 나아가는 우리들, 얼마만큼 멀리 왔는지는 간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하듯 뒤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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