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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의 공간엿보기] <12> 서울대 - '유배지'에서 '요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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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의 공간엿보기] <12> 서울대 - '유배지'에서 '요새'로

입력
2012.08.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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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겨울, 박정희 전 대통령은 홍종철 당시 문교부장관, 최문환 서울대 총장을 이끌고 일찌감치 눈 여겨 봐뒀던 관악골프장을 찾는다. 서울대가 마땅한 새 캠퍼스 자리를 못 구해 애를 태우던 때였다. 거긴 어떠냐고 제안한 것도, 앞장서서 '은밀한'답사를 주선한 것도 그였고, 안 판다는 골프장 업주를 불러 거래를 성사시킨 것도 그였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60년사는> "골프족의 향락보다는 대학촌 건설이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 있다"며 그 사연을 전한다.

이듬해 3월 정부가 서울대 캠퍼스 부지로 현재의 관악구 관악로 1번지가 선정됐음을 공식 발표하던 날, 박은 최에게 친서까지 전한다. "한강을 굽어보는 언덕에 문화의 유산을 이어받을 사랑스러운 아들딸들에게 진리 탐구의 전당을 마련해주고자 한다"는 요지였다. 관악캠퍼스는 그렇게 탄생했고, 서울대는 비로소 종합대로서의 번듯한 틀거지를 갖춘다. 부지만 약 350만㎡(107만평ㆍ인근 농대 연습림 514만평 별도)였다.

터 자체의 값어치와 <…60년사>의 행간에 묻어 있는 절대권력자의 편애, 그 편애에 대한 서울대의 은근한 뻐김에도 불구하고, 당시 항간에서는 독재자의 속셈을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도심 시위를 일삼던 서울대 학생들을 후미진 자리에 한데 몰아 놓음으로써 저항의 파급력을 봉쇄하려는 의도라는 거였다. 진실이 뭐든, 관악캠퍼스의 입지는 음모론이 그럴싸하게 들릴 만큼 후미졌고, 지형 역시 은근히 은밀해 유배나 은둔의 거처로 어울려 보였다. 75년 이전(移轉) 당시 강북(불광동) 학생들이 통학하려면 왕복 너덧 시간씩 버스를 타야 했다고 한다. 일부는 인가에서 한참 벗어난 그린벨트 안 산자락 등고선을 따라 개성 없이 도열한 회색 철골 콘크리트 학교 건물들을 '관악 교도소'라 불렀다.

캠퍼스는 관악산 서북능선의 깊고 널따란 골짜기 하나를 독차지하고 들앉은 형상이다. 뒤로는 주봉 연주대가 섰고, 왼편에는 갈빗살 같은 수림 구릉이 오른편으로는 도림천 원류가 계곡을 따라 흐른다. 정문과 낙성대쪽 후문만 차단하면 나들기가 까다로워 대학 연합시위가 빈번하던 80년대에도 서울대는 학생들이 내켜 하지 않던 시위공간이었다. 캠퍼스 경계는 산 계곡 할 것 없이 철조망으로 빈틈없이 봉쇄돼 있었다.

구글 위성지도에 나타나는 관악캠퍼스는 산의 심장부를 향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형상이다. 90년대 이후 캠퍼스는 산을 향해 수평ㆍ수직으로 급팽창했다. 대학 정문에서 산자락이 시작되는 공학관까지 오르막 직선거리가 줄잡아 2.5㎞. 캠퍼스 원년에 지어진 잿빛 콘크리트 건물공간 외곽으로 나름 개성을 살린 건축물들이 잇달아 들어섰다. 40여 개 동에 불과하던 건물은 현재 211개 동으로 늘었다. 도시와 학교를 잇는 셔틀버스와 마을ㆍ시내버스는 5.4㎞의 외곽 순환도로를 따라 선 10여 개의 교내 정류장을 순회한다. 수용 인원 3만여 명. 지금의 관악캠퍼스에서 휑한 유배지의 느낌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지금의 이미지는 거꾸로, 안에서 빗장을 건 요새나 난공불락의 성채를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요새의 이미지는 우선 서울대가 축적해온 엄청난 유ㆍ무형의 자산에서 연상된 것이다. 서울대는 그간 두어 차례 제 몸집을 크게 부풀리는 과정에서 영리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 일들이 무리 없이 진행된 데는 물론 정부 기관 등 각계에 포진한 동창 권력의 적극적인 부역도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대학 측 기대에야 늘 못 미쳤겠지만, 역대 정권치고 서울대 대접에 소홀했던 정권은 없었다. 하지만 자산 축적의 가장 기름진 밑거름은 역시 시민들의 굳건한 선망이었다. 신입생 입학성적으로 대학 서열이 매겨지는 한국 교육 현실에서 서울대는 늘 가장 달고 실한 과실을 선점해왔다. 태생부터 1등이었던 서울대가 스스로의 분발로만 오늘의 자리를 북돋웠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서울대는 인재를 키우는 대학이 아니라 인재들이 거쳐가는 대학"이라던 한 서울대 교수의 말을, 한 삐딱한 교수의 자조(自嘲)로만 이해하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교육문제의 비판과 해법이 서울대를 찍어 겨냥해온 것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서울대의 성장이 한국의 고질적인 교육문제, 즉 입시 파행과 사교육 비대화, 대학서열화 등의 심화와 나란히, 심지어 서로 부역하며 진행됐다는 점에 주목해온 이들도 더불어 늘어났다. 하지만 그들의 힘만으로는 서울대의 강고한 빗장을 열어젖히는 데는 실패해온 듯하다.

그 사이 서울대 폐지론이 있었고, 국립대 통합안과 지방 국립대 거점대학화 방안 등이 있었다. 최근에는 야당 대권 주자들이 '혁신네트워크안' '통합네트워크안''연합체제안'등을 힘주어 거론하고 나섰고, 학계나 시민단체들도 열띤 어조로 제안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그 공방에서 방어의 주체는, 예나 지금이나, 서울대 대학본부가 아니라 학계와 정ㆍ관계 언론계 등에 포진한 서울대 우호진영이다. 방어논리- 뒤집어놓으면 서울대 편애의 논리인데- 역시 언제나 대동소이하다. 서울대를 없애자는 거냐, 연구 교육 국제경쟁에서 앞서려면 더 지원해야 한다, 부작용을 막자고 경쟁을 포기하자는 거냐,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냐…. 과녁의 중심인 서울대는 제 몸집을 부풀릴 때 보이곤 하던 잰 행보가 무색하게, 이번에도 묵묵부답이다. 서울대의 오늘이 누구에게는 공박의 근거가 되고 또 누구에게는 특혜의 명분이 되는 그 공고한 순환논리 구조 속에서, 논쟁은 진전되지 못한 채 맴돌다 멎고 맴돌다 멎곤 했다. 그 사이 서울대는 비판에 대한 내성과 면역력을 키우며, 연전의 '법인화'처럼, 요새의 성벽을 더 두텁게 보강하곤 했다.

71년 관악캠퍼스 기공식 날 시인 정희성(당시 국문4)은 "그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로 시작하는 긴 축시('여기 타오르는 빛의 성전이')를 낭송했다. 출발의 단상에 울려 퍼진 저 시의 당당함은, 이미 지닌 권세의 과시가 아니라 미래의 명예에 대한 믿음과 다짐의 의미였을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저 시의 약속을 감당해야 할 주체들은 철옹성 같은 캠퍼스 안에서 귀를 틀어막고 농성을 하고 있는 듯하다.

관악캠퍼스의 성장(곧 성체화)은 공간의 난개발과 나란히 진행됐다. 캠퍼스 중심 공간인 대학본부와 중앙도서관, 학생회관은 원년의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둘러싸인 '구(舊)도심'의 중심일 뿐 확장된 캠퍼스를 아우르는 공간적 지위를 상실했고, 전망대 역할을 하던 천문대와 교수회관은 배후의 고층 공학관과 연이어 지어진 연구소들로 하여 어정쩡해졌다. 조밀화 역시 심각해서, <…60년사>의 지적처럼 "공간의 건물 신축을 통한 캠퍼스 확충은 분명 새로운 공간 확보를 위한 노력이었으나, 그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오픈스페이스를 잠식함으로써'포화'라는 공간 부재를 초래"했다. 캠퍼스와 산이 만나는 자리에 널찍하게 펼쳐진 사범대 뒤편 잔디밭(버들골)은 긴장과 이완의 전이공간이자 호젓한 해방공간으로서 긴 세월 지녀온 정서적 가치를 잃고 공대캠퍼스의 앞마당쯤으로 왜소해진 듯 보였다.

그리고, 캠퍼스의 어지러운 공간성으로 대변되는 서울대의 파행은 유배지로 여겨지던 과거의 황량함 못지 않게 황폐해 보였다. 과거 유배지의 삭막함을 견디게 해준 그들의 소명의식과 시민들의 기대와 애정을 저 요새화한 공간 안에서 감지하기란, 유배지의 흔적을 감지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서울대가 이미 잃어버린 듯한 그것들은, 국민에게 되갚아야 할 부채로써 서울대의 자산 항목 속에 엄연할 것이다.

폭염 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1일 오후, 서울대 학생회관 2층 기념품 판매장에는 고교생으로 보이는 10여 명의 학생들이 자잘한 기념품들을 고르고 있었다. 상기된 듯 발갛게 익은 앳된 얼굴에, 공손하게 달려 있는 가슴 위의 명찰. 누군가의 인솔하에 견학이라도 온 모양이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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