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공천헌금 의혹 파문을 조사할 당 진상조사위원회가 9일 공식 출범했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측과 비박(非朴) 측의 정치 공방으로 당 내분만 키우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 강제 수사력 없이 무슨 성과를 내겠느냐는 회의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은 이날 최고위원회를 열어 '현기환ㆍ현영희 공천관련 금품수수 의혹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의결했다. 진상조사위는 당 지도부 추천 인사 4명과 대선 경선주자 5인 추천인사 5명 등 9명으로 구성됐다.
위원장을 맡은 이봉희 변호사를 비롯해 조성환 경기대 교수, 박요찬 변호사, 당 법률지원단장인 이한성 의원 등 4명은 당 추천으로 참여했다. 5명의 경선주자 측이 추천한 인사는 김재원(박근혜 후보 측) 의원, 김용태(김문수 후보 측) 의원, 이희용(김태호 후보 측) 변호사, 이우승(안상수 후보 측) 변호사, 김기홍(임태희 후보 측) 변호사 등이다.
진상조사위는 10일 첫 회의를 열 예정이지만 출발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당장 조사범위와 활동방향을 두고 내부 이견이 만만찮다. 당 지도부와 친박계는 조사범위를 현영희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의 공천 헌금 의혹에 국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선주자 5명이 참석한 가운데 5일 열렸던 '7인 연석회의'에서도 이렇게 합의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비박 주자 측은 공천 의혹 전반에 대해 조사 해야 한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김문수 후보 측 김용태 의원은 "5일 합의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번지는 소문을 이번에 털어야 한다"며 "공천 전반이 안 된다면 최소한 비례대표 공천 전체에 대해서는 들여다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 측 김재원 의원은 "당에서 결정한 대로 하면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봉희 위원장은 "조사범위나 구체적 방법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위원회 논의를 거치면서 여러 상황을 판단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 수사권이 없다는 점도 진상조사위의 한계를 노정한다.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강제력 없는 조사로는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어렵다. 당장 의혹의 핵심인 현 전 의원 금품 수수 여부에 대해 명쾌한 규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 조사위원은 "진상조사위로서도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조사위는 당사자들을 부르는 등 나름대로 여러 조사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진상조사위가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친박-비박 간 감정싸움만 격화시키는 또 다른 불씨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우에 따라선 시중에 떠도는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는 '의혹 확대 위원회'가 될 수도 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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