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경북 구미시 공단동 구미국가산업단지 1공단 내 대우전자 사거리. 왕복 4차선 도로의 한쪽 2차로 횡단보도 위 맨홀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4.5m 높이의 신호등 위로 치솟고 있었다. 직경 1.2m 맨홀에서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는 뿌연 증기는 손을 델 정도로 뜨거웠다.
당초 밀폐형이었던 이 맨홀 뚜껑은 최근 지하에서 치솟는 증기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수십 개의 구멍을 뚫은 벌집 모양으로 개조됐다. 갑작스러운 폭발 우려 때문이다. 인근 공장의 한 직원은 "6월부터 갑자기 수증기가 치솟기 시작했다"며 "여름철 우수기에 가끔 이런 일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한 경우는 예년에 없던 현상"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수출단지인 구미국가산업단지 1공단이 최근 지하에 매설된 생산용 고압 증기관과 낙동강에서 유입된 지하수가 반응, 고온 증기가 쉴새 없이 뿜어져 나오면서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위험지대로 바뀌고 있다. 이곳에는 '지하수위 증가로 인해 매설된 열수송관에서 재증발 증기가 배출되고 있다'며 '화상위험'과 '접근금지'를 알리는 안내문과 위험표지판이 지나가는 공단근로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1973년 준공된 1공단은 24.6㎢의 구미공단 중 가장 넓은 10.4㎢의 면적에 섬유, 전자업종 등 77개 사가 입주해있으며 이중 58개 사가 열병합발전소로부터 증기를 공급받고 있다. 낙동강 우안의 1공단은 다른 공단과 달리 낙동강과 인접한 저지대에 있어 매년 침수 피해를 겪는 곳이기도 하다.
이날 낙동강과 인접한 33번국도의 4차선 직선도로와 500m 정도 떨어진 대우전자 사거리 등의 맨홀 3곳에서는 뜨거운 증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증기 기둥은 도로 옆 은행나무를 뒤덮고 지나는 차량들을 덮쳐 운전자의 시야를 가로막기도 했다.
1공단 내 깅감단지 앞 맨홀에서는 작업인부 2명과 구미열병합발전소의 시설보수팀 직원이 맨홀 벽체 보수공사에 한창이었다. 지하수가 맨홀로 스며드는 것을 막는 차수 공사였다. 대형 송풍기로 깊이 4m 맨홀 안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열기를 빼내고, 직경 100㎜ 규모의 수중펌프는 맨홀 안에 스며든 지하수를 퍼내고 있었다. 지하수는 배수관을 통해 옆 하수구로 끊임없이 콸콸 쏟아졌다.
구미열병합발전소 관계자는 "열송수관이 설치된 지 23년이 지나 노후돼 내부 부식으로 균열이 생긴데다 지하수가 스며들면서 재증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전소측은 이번 사태가 열송수관 노후에다 4대강 사업으로 준공된 칠곡보의 관리수위 상승으로 지하수가 다량 유입되는 복합적인 원인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낙동강에서 역류해 1공단으로 스며든 강물이 고온ㆍ고압의 노후 증기관과 반응하면 증기관이 팽창해 폭발할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에 안전조치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요즘 같은 갈수기에도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우수기에는 지하수 유입량이 급속도로 많아져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4대강 사업 이전에는 낙동강 구미대교 근처 수위가 바닥이 보일 정도였으나 칠곡보 담수 이후 수심은 25m 정도로 올라와 있다.
그러나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측은 사태 수습과 공사비 지급 등을 요구하는 구미열병합발전소 측에 "관로를 재매설하거나 이설하는 것은 (발전소) 소유자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사항"이라며 "4대강 사업의 영향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만 해명하고 있는 상태다.
구미=김용태기자 kr8888@hk.co.kr
이용호기자 ly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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