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를 여행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콘냐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콘냐는 아나톨리아 중부에 있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도시이다. 그곳은 터키의 이슬람교도들은 콘냐를 성지로 생각한다. 수피즘을 창시한 시인 루미의 무덤을 참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례객들을 위해 이곳에서는 수요일과 토요일 밤마다 '세마'라고 불리는 수피 댄스를 무료로 공연하고 있다. 나는 시인 루미의 무덤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수피들이 접신을 할 때까지 고통에 찬 원무를 춘다는 그 춤이 보고 싶어서 그 도시를 찾아갔다. 오후 9시에 열린 공연은 원형 실내 체육관에서 열렸다. 공연 전, 외국인들을 모아놓고 수피철학을 전공한 철학 교수는 이 도시의 역사와 루미의 일대기와 세마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강연을 했다.
공연은 정말 좋았다. 그러나 공연 이외의 것들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의식이 루미의 무덤이 있는 모스크의 정원 같은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나는 상상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여 이 의식을 바라보고 몰입할 것이라 예상했다. 더욱이 강연의 마지막에 철학교수는 "이것은 결코 쇼가 아니고 종교적 의식이다"란 사실을 몇 번씩 강조해서 말했다.
원형 체육관이라는 신축건물과 현란하던 조명과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터트리는 플래쉬 불빛 같은 것들 때문에, 이것은 의식이라기보다는 쇼에 가까웠다. 의식이 쇼로 전락된 것은 이 귀중한 종교적 자산을 관광의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 콘냐 시의 노력 때문이리라. 타지 사람들을 콘냐로 불러들여 관광수익을 올리고 콘냐를 재발견하게 하는 데에 큰 기여는 했겠지만, 터키의 오래되고 숭고한 종교적 자산 하나는 그 숭고함을 잃어가고 있었다.
몇 해 전에 일본의 미야자키에 있는 그림책 도서관에 견학을 간 일이 있다. 그곳은 마야자키 외곽 산 속에 있었고, 샬레 몇 채를 지어 방문객들이 숙박을 하며 며칠씩 머물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세계적으로 아름답고 의미있는 도서관 중 하나라는 평판답게, 그곳은 산자락과 숲을 그대로 유지한, 조용하고 특별한 휴식공간이었다. 관장에게 이 외진 곳에 도서관을 짓게 된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는 산의 경관이 아름다운 그 지방을 어떻게든 관광지로 개발해보려고 관청에서 여러 차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엑스포를 개최하기도 했고 지방 특산물을 지정해서 홍보를 해보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고 했다. 자연이 최대의 장점인 그곳에서 그 모든 계획들은 너무 인위였다고. 그래서 그는 삶의 자연스러움과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그림책 도서관을 시에 제안했다고 했다. 그림책 공부를 오랫동안 함께 해오던 동네사람들과 함께, 친자연적인 형식과 내용을 지닌 도서관을 운영할 테니 관광개발에 쏟을 비용을 투자해보라고 제안했다고 했다.
나는 내가 태어난 경북 경주에 몇 년에 한번쯤은 여행을 간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경주는 수학여행 인파와 관광객들이 봄철과 가을철이면 거리를 메웠고 도시는 몸살을 앓았다. 이방인들이 누비고 다니는 경주에서 어린 토박이였던 나는 늘 골목 구석에 주눅이 든 채로 인파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기와집과 신라의 많은 문화유산으로 경주는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러나 작년에 경주에 갔을 때에는 그 모든 아름다움의 가장 앞쪽에 배치된 각종 관광홍보 현수막과 엑스포를 내세운 낯선 조형물들과 특산물을 파는 간판의 홍수 때문에 경주다운 풍경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종교와 유적과 문화와 예술은 내향적이어야 한다. 간단하게 요약할 수 없는 인류의 심연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외향적이어지는 순간에 그 심연에서 풍겨나오는 아우라를 상실하고 만다. 이것은 아우라를 상실하는 순간에 그 가치를 함께 상실한다. 종교와 유적과 문화와 예술의 근원지들이 관광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정책의 인위성이 감히 쉽게 손댈 일은 아니다. 내밀하고 불친절한 형식이어야 한다. 그늘 속에 두고 향유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분야를 다루는 '문화관광부'라는 말과 '문화체육부'라는 말도 빈곤하기 짝이 없는 호명 같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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