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하고 근무지를 이탈한 육군 대위가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여성 대위의 숙소로 찾아가 교제를 요구하며 말다툼을 벌이다 총기를 발사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군의 총기 및 탄약 관리 부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9일 오전 3시8분쯤 전남 장성군 삼계면 S군인아파트 2층 복도에서 육군 모 사단 정모(33) 대위가 K2 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숨졌다. 정 대위는 이 아파트에 사는 김모(26) 대위를 찾아가 교제를 요구하며 말다툼을 벌였다. 위협을 느낀 김 대위는 정 대위의 소총에서 탄창을 분리해 아파트 창문 밖으로 던졌고 정 대위가 이를 찾으러 나가자 현관문을 잠갔다. 잠시 후 탄창을 주워온 정 대위는 문이 잠겨 있자 아파트 복도에서 목숨을 끊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의 아파트 현관문에 탄환 2발이 발사된 흔적이 있는 등 모두 4발의 탄환이 발사됐다.
정 대위가 김 대위와 말다툼을 벌이는 동안 김 대위 숙소의 옆 방에 사는 동료 장교가 오전 2시58분, 3시4분에 112로 전화해 "어떤 사람이 침입한 것 같다" " 빨리 와달라"고 신고했고, 3시7분에는 "남자가 총을 들고 있다. 난리가 났다. 빨리 와달라"며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으로 밝혀졌다.
정 대위와 김 대위는 1년여 동안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육군 관계자는 "정 대위의 사무실 책상 서랍에서 유서가 발견됐다"며 "유서에는 김 대위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답답해 죽고 싶다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대위가 충격으로 치료를 받고 있어 두 사람의 교제 여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정 대위는 전날 부대에서 진행된 영점사격 훈련에 참가했다가 반납하지 않은 총기와 지휘통제실에 보관돼 있던 실탄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육군 조사 결과 8일 오전 훈련 후 오후 5시쯤 본부중대 당직사관이 총기가 반납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정 대위에게 확인했고, 정 대위는 "지금 바빠서 조금 있다 반납할 테니 걱정 말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정 대위는 총기를 반납하지 않았고, 사건 당일 오전 8시까지 근무한 당직사관도 더 이상 반납을 독촉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육군은 밝혔다.
정 대위가 소지했던 실탄 30발은 지휘통제실에 보관돼 있던 것이었다. 지휘통제실에 보관 중인 실탄은 해당 부대 작전과장이 매일 점검해야 하지만 이 날은 점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본부중대 당직사관과 작전과장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한 뒤 문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 대위가 사건 전날 오후 6시20분쯤 자신의 차량에 K2 소총과 실탄 30발을 싣고 부대를 나올 때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 대위는 경기 연천에서 전남 장성까지 이 차량을 운전해 350㎞를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육군 관계자는 "총기 및 탄약 관리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정확한 사고 경위와 원인 등을 조사해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장성=안경호기자 khan@hk.co.kr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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