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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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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5>

입력
2012.08.0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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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주가는 원래 무악재 아랫녘 홍제원에 모여 있더니 운종가에 시전이 번성하고 도성 안팎에 난전이 벌어지면서 문안으로 들어와 종루 뒷길인 피맛골에 자리를 잡았고, 가장 번성한 곳이 좌포청 부근과 태평방 다동 일대와 서린방 부근이었다. 북부에는 주로 아전 군교들이 주요 단골손님이 되고 서린방 일대에 역시 아전과 장사치들이 뒤섞이더니 청계천 건너 남부 수표교 일대에 돈냥깨나 모았다는 중인 장사치들의 술집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궁중 연회에 참예하는 기생이 일패(一牌)요, 재예가 출중하건만 궁중에 들지 않은 기녀로 사대부들과 교유하며 음률은 물론 시 서화를 배웠던 부류가 이패(二牌)라 하고 아무나 상대하지 않는다 하여 은군자(隱君子)라고 하였다. 그다음이 상민이나 천민의 자녀로 팔려오든가 또는 주점의 포주가 어려서부터 양딸로 키워오든가 하면서 기녀로 삼았는데, 술도 팔고 몸도 판다고 하여 가장 낮은 계급의 창기로써 몸값을 대납하지 않으면 풀려날 수가 없었다. 이들을 삼패라고 하는데 이들 중에는 간혹 재예가 뛰어나 춤이며 소리를 잘하는 자가 있어 광대물주가 몸값을 물어주고 연행패에 넣기도 하였다.

박삼쇠가 요즈음 잘 가는 색주가라 하여 모두들 따라나섰는데 조대추는 가끔씩 들렀던지 창기들의 이름도 들추면서, 어느 집 누구는 인물이 어떻고, 또 누구는 소리보다는 몸매가 좋다든지 하면서 개천을 따라 걷는 내내 떠들었다. 그들이 장독교 지나 수표교에 이르러 뒷골목으로 들어서니 고만고만한 기와집들이 처마를 잇대고 있는데 한 두어 집 건너 장대 끝에 대나무 용수를 거꾸로 씌우고 그 아래 사초롱(紗燭籠)을 달아놓은 게 보였다. 창기들이 집 앞에 나와 섰다가 사내들이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제각기 나와서 소매도 잡고 옷자락도 당기면서, 서방님 날 두고 어디 가시오, 잠깐 들러서 소리라도 한번 들으시구려, 교태가 낭자하였다.

어허, 지금 추월이네 맞추어 놓고 가는 길이다.

그래도 홍등의 법도가 있어 약조된 집이 있다 하니 이죽삐죽하면서도 뒤로 순순히 물러난다. 박삼쇠의 단골집이었든지 계집 두엇이 나와 섰다가 얼른 대문을 활짝 열고 먼저 한 걸음 내딛으며 외친다.

한양제일 명창 박 서방 드십니다.

들어서니 중인의 살림집에 마당이 자그마한데 오종종한 장독간이 보이고 맞은편 마루에서 주모가 버선발로 뛰어내려와 반겼다.

아이고, 오늘 우리 집 문 닫아야겠네.

하고는 창기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이제 손님 받지 마라!

그 집에서 귀한 손님 방이란 부엌 안방 건너편 상하 방이 연달아 달린 방이었다. 이러한 놀이 손님이 들면 가운데의 장지문을 열어젖히고 위는 술판이오 아래는 놀이판이 되는 거였다. 추월이 오늘 박삼쇠가 물주인 줄을 뻔히 알고 물었다.

술은 무얼로 가져올갑쇼?

말해 뭘 하나, 당연히 공덕리 소주지.

그들이 둘러앉자마자 주모 추월이가 가운데의 장지문 열어젖히고 교자상을 들여온다 초벌안주를 들인다 분주한데 이신통이 건너다보니 아랫방 윗목에 가야금 해금 젓대와 장구가 가지런히 놓였다. 술이 다음 차로 이어지고 진안주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창기 둘이 가운데 끼어 앉았다가 스스럼없이 나아가 하나는 장구를 잡고 다른 하나는 잡가를 불렀다. 박삼쇠가 대견하다는 듯이 듣고 나서 잘못된 가사와 음정을 지적해주었고 추월이가 나서며 가야금을 잡더니 한마디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명창이시지만 아이들 기죽어 어찌 소리 한 판을 마음놓고 하겠소?

그리고는 낭랑하게 새타령을 부르는데 제법 높낮이의 청과 음률이 맞아 떨어지고 신명이 실려 있다. 좌중이 모두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라 절로 무릎을 치며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좋지, 잘한다, 얼쑤! 술이 몇 순배 더 돌아간 뒤에 주모 추월이가 미닫이 너머로 고개를 쭉 빼며 외쳤다.

그믐아, 와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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