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팠다. 8㎏ 감량이라니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지난해 중순, 태권도 대표팀 막내 이대훈(20ㆍ용인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년 경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63㎏급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목에 건 이대훈의 남은 목표는 '그랜드슬램'(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에선 63㎏급이 없었다. 평소 체중이 65㎏~66㎏인 이대훈은 68㎏으로 올리느냐, 58㎏으로 내리느냐, 기로에 서서 갈등했다. 결론은 감량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현실적으로 58㎏에서 금메달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대 8㎏을 빼야 하는 '살과의 전쟁'은 녹록지 않았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 식사량을 줄이지 않는 대신 훈련량으로 살을 빼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 세례를 받으면 '체중이 떨어져 나간다'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고 말했다.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견딜 만 했다. 그러나 지나친 감량 후유증이 우승 문턱에서 발목을 잡았다. 공격을 하다가 스스로 지쳐 번번히 매트에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대훈이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관문, 올림픽 결승전에서 무너졌다. 계체를 통과하고 하루 만에 3㎏을 찌웠지만 이대훈의 양쪽 볼은 옴폭 파여 핼쑥해져 있었다.
은메달 확정 직후 기자들이 이대훈에게 '다음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58㎏급과 68㎏급 중 어떤 체급을 고르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많이 먹을 수 있는 68㎏급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동안의 굶주림에 대한 설움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듯 했다.
이대훈의 태권 발차기는 다섯 살 때 시작됐다. 태권도장을 운영했던 아버지(이주열씨·42세)의 손에 이끌려서다. 성산초등학교 5학년 때 태권도부가 있는 중계초로 전학해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 중학교 2학년때는 '내가 죽고 난 뒤 묘비에 어떤 글이 쓰여질지 적어보세요'라는 과제를 받고는 "태권도 국가대표로 2012년과 2016년, 2020년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하고 99세에 눈을 감았다"라고 썼을 정도로 '독종'이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63㎏급 금메달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린 그는 당시 한국 태권도 대표 선수 12명 중 최연소이자 유일한 고교생이었다. 이듬해 경주 세계선수권 우승, 올해 5월엔 베트남 아시아 선수권대회마저 휩쓸었다. 올림픽 금메달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키 180㎝가 넘는 이대훈은 58㎏ 체급에서는 장신에 속한다. 그만큼 하체가 길어 얼굴 돌려차기가 주특기였다. 그러나 순발력이 떨어지는 약점도 있었다. 결승전 패인도 순발력에서 밀렸다는 평가다. 톱랭커를 피할 수 있는 시드 배정을 받지 못했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이대훈은 체급을 낮춰 올림픽에 출전하는 바람에 시드 배정에서 제외됐다. 따라서 예선 1회전에서 랭킹 4위 펜-엑 카라켓(태국)을 만나 한 점차 진땀 승부를 펼쳐 체력소모가 많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런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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