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할 작정에 저녁 두둑 챙겨먹고 산책에 나섰다. 해질녘 얼마만의 바람인지 길 따라 걷지 않을 수 없던 터, 간만에 참 사람 인자로 살아보는 기분이었다. 이 여름 얼마나 뜨거웠던가. 또 얼마나 시끄러웠던가. 모두가 한목소리로 덥다 하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탓에 정작 낼 수 없던 숨은 또 한 목소리가 고요한 가운데 비로소 들리는 듯했다.
어차피 지나갈 여름이고 어차피 끝날 올림픽인데 왜 이렇게 매달렸던가. 그사이 연둣빛 녹조로 뒤덮인 강이 우리의 발아래까지 치고 올라왔다. 물색은 간데없고 연잎밭이라 착각할 정도로 강은 더 이상 강이라 부름직한 것이 아니었다.
코를 찌를 듯한 악취를 무기로 완강히 강이길 거부하는 그 죽은 물빛 앞에서 슬픔이 밀려왔다. 이 와중에 4대강 때문이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은 왜들 늘어놓는 걸까. 사업이랍시고 강을 건드렸으니 이 모양이지 강이 저 혼자 더위 먹고 미쳐 부리는 행패란 말인가.
전 국토가 바짝 말라가는데 비 소식은 없고, 경제 위기는 곧 밀어닥칠 거라는데 빚쟁이 국민들이 대부분이고, 어이없이 죽어가는 사람들 많은데 죽고 나서야 경찰들은 바쁘고, 용역깡패란 말도 안 되는 직업의 소유자들이 어떻게 폭력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지 그걸 써먹는 대기업의 자손들은 윤리를 삶아 잡수셨는지, 대통령은 요즘 밤에 숙면 취하시려나. 아 맞다, 형님이 감옥 가도 대국민사과를 까먹는 분이셨지.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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