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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들만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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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들만의 정의

입력
2012.08.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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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남성에게 성폭력을 휘둘러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사람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는 같이 지내던 여관방에서 술을 마시다 피해자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성폭력을 저질렀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항문이 파열되는 상처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7명의 배심원 중에서 6명이 무죄를 제시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배심원들은 "항문 파열 이외에 별다른 상해가 발견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당시 상황에 대해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거나 진술을 번복한 점, 피해정황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점에 미뤄볼 때 유죄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배심원들의 이런 주장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징후를 드러내주고 있다. 첫 번째는 이성애중심주의다. '항문 파열 이외에 별다른 상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을 한번 보자. 이 말은 남성들 간에는 성폭력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성폭력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이지 남성들 간에는 성립할 수가 없다. 그건 그냥 폭력에 불과하다. 항문 파열을 성폭력에 의한 상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어난 '사소한' 사건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성폭력으로 인지할 수 없었다. 아마 피해자가 여성이었다면 배심원들이 판단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성폭력에 대해 '분노'했을 것이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가해자를 '응징'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의'는 성에 대한 이성애적 편견 앞에서 멈추었다.

두 번째로 남성성의 문제다. 사실 성폭력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워낙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식의 편견이 강한 사회다. 피해자가 평소에 행실을 어떻게 했기에 그런 일을 당했냐고 생각한다. 또 정말 싫었다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저항을 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재판에서도 배심원들이 무죄 의견을 낸 이유 중의 하나가 '성행위 과정에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특히 남성 간에 벌어지는 성폭력의 경우에는 이런 편견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여자도 아닌 남자가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자 '라면'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그걸 물리쳤어야한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피해자가 남자'도' 아닌 존재라는 말이다. 남자들은 자신이 성폭력 당한 것을 발설하는 순간에 남성성을 제거 당한다. 그렇기에 원천적으로 남성에 대한 성폭력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남성은 정의를 구현하는 존재지 정의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누구의 말만 말로 인정하는가의 문제다. 무죄의 이유 중 하나가 피해자가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거나 진술을 번복한 점'이다. 그런데 그가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이 문제인가. 재판부조차 판결문에서 "피해자의 정신 상태를 고려할 때 배심원들이 피해자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고 했다고 한다. 지체장애가 있다는 것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가 지체장애가 있으니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을 고려했어야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체장애인의 말을 못 알아듣고 그 말을 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소위 '정상인'의 말만 말로 인정하지 그렇지 않은 말은 들을 가치가 있는 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장애인의 언어는 정의를 주장할 수 있는 언어가 되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하나도 정의롭지 않다. 아니 우리 사회의 정의는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그들에 의한 정의에 불과하다. 정의를 주장하거나 구현하거나 정의에 호소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그들'이 먼저 되어야한다. 이 사건에서 배심원들은'정의'가 아니라 '그들'이 누구인지를 적나하게 보여줬다. 남성이어야 하고, 이성애자야하고, 소위 말하는 '정상인'인만이 '그들'이 될 수 있다. 그들만이 사람이다.

엄기호 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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