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정치권의 선심성 복지공약 경쟁을 야유하는 '부작위(不作爲)의 저항'처럼 보인다. 여야를 떠나 무상보육부터 반값등록금까지 돈 쓰겠다는 약속만 잔뜩 해댔다. 대선을 겨냥한 정치권의 복지공약을 실행하려면 다음 정권 5년간 최대 340조원, 매년 43조~67조원의 추가 예산이 든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니 어제 발표된 개편안의 관건은 정치권의 선심공약을 뒷받침 할 재원확보 방안의 여부였던 셈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짐짓 유효한 방안을 거의 내놓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그 동안 '부자ㆍ대기업 증세' 주장이 들끓었다. 세수 증대 및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표적 해법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개편안의 관련 방안은 밋밋하기까지 하다. 대표적 부자 증세 방안으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기존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내려 과세대상을 확대키로 했다. 하지만 세수 증대효과는 연간 1,200억원에 불과해 기대에 못 미쳤다. 대기업 증세 방안도 과표 1,000억원 이상 대기업의 법인세 최저한세율을 14%에서 15%로 늘렸지만, 세수 효과는 연간 1,10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는 최대 관심사였던 소득세 개편이나 종교인 과세 방안은 아예 내놓지도 않았다. "국회 법안 심사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큰 폭의 조정도 할 수 있다"는 게 기재부의 입장이지만, 사실상 증세의 부담을 정치권에 떠넘긴 셈이 됐다. 정부의 태도가 정치권에 대한 저항이든, 여당의 생색을 돕기 위한 의도적 복지부동이든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간 셈이다.
여야는 이미 부자 증세의 핵심 방안을 내놓았다. 새누리당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38%에서 40%로 높여 연간 1조원의 세수를 늘릴 방침이다. 민주당은 최고세율 적용 소득구간을 현행 과세표준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낮춰 1조2,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법인세에 대해선 새누리당이 세계 경기여건 등을 감안해 증세에 신중한 반면, 민주당은 법인세 최고세율도 현행 22%에서 25%로 올리는 쪽으로 당론을 정했다.
세제개편안에 대한 국회 심의는 여야 간 격렬한 정치적 공방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공방이 국가 재정의 합리적 운영을 뒷전으로 한 채,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증오와 편가르기로 치달아서는 곤란하다. 국회 심의가 정치권의 복지공약 경쟁을 차분히 반성하고, 세제의 합리성을 보강하는 진지한 논의의 장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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