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장마철 큰비에 쉬지 않고 내리 치는 번개에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곧잘 고장나곤 했다. 3,4층만 되어도 오르락내리락 무슨 걱정이랴, 점검 중이라는 빨간 글자만 봐도 화들짝 놀라는 것과 동시에 욕지기가 치민 건 즐거운 나의 집이 20층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가만, 계단 수를 한 층에 10개만 잡아도 어림잡아 200개는 디뎌야 한다는 계산 아닌가.
밖에 폭우는 쏟아지지 오줌보는 터질 것 같지 그렇다고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릴 수는 없고 망설임 끝에 가방에 쇼핑백에 택배 박스에 우산까지 바리바리 챙겨 계단을 밟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중도에 멈추면 꼼짝할 수가 없다고 한 말이 떠올라 이를 악물고 집에 들어섰을 때, 신발장 앞에 토하고 만 내가 있었다.
아 알 밴 내 다리여, 아 폭발 직전의 내 심장이여. 어릴 적 비 오는 날이면 운동부 선수들은 운동장을 뛰는 대신 계단 오르내리기로 그 훈련을 대신하곤 했다. 그만큼 운동량이 어마어마한 훈련법이기도 하거니와 노약자에게는 절대로 엄금할 이걸 글쎄 주민은 패스, 배달사원들은 의무라 써붙인 강남의 아파트가 있다지 뭔가.
새벽에 신문을 기다리다 툭 던져지는 소리 들리기 무섭게 문 열었다가 아주 앳된 소년의 눈망울과 마주했던 기억이 난다. 망 안에 우유를 번갈아 넣어주던 장애인 부부와도 인사 몇 번 나눴었지. 그들로 인한 전력 낭비가 얼마나 되는지 전공이 전기인 아빠한테 한번 물어나 볼 참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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