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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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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4>

입력
2012.08.0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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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말을 놓고 해?

그래. 놓고 하자구.

미친 시러배 아들 녀석 좀 보게. 이 녀석아, 언젠 말을 붙들어 매고 했니? 놓고 하게.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 친구로 지내자 그 말일세.

참, 그래 그것두 좋지. 헌데 여보게 여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나?

이 대목이 잽이가 탈의 재담을 이끌어내며 좌중에 소개하는 장면이고 탈의 얼굴을 가지고 놀려 먹다가, 다시 청중이 가보지 못한 다른 고장의 산천과 인심을 소개한다.

그래, 너는 정말 유람을 다녔냐?

다녔지. 이래 뵈두 팔도강산을 무른 메주 밟듯 하고 다닌 사람이다.

건건이 발로?

건건이 발이라니? 건건이는 느이 애비 밥상에 놓는 게 건건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맨발로 말이다.

맨발은 점잖지 못하게 왜 맨발로 다녀? 의관정제를 하고 다니지.

뭐? 의관 정제를 해? 아니, 그럼 너도 욕심쟁이 고리타분 양반 샌님이냐?

네 눈엔 내 이 수염도 안 보이냐?

뭐 수염? 아 돼지꼬리 같은 털 말이지?

이놈아, 그게 느이 할애비 수염이다.

예끼, 이놈아! 그래 어디를 갔다 왔니?

제일 먼저 동대문 밖을 썩 나서 망우재를 넘어 떡수에 가서 떡 사먹고, 국수리에 가서 국수 먹구, 양수리에 가서 물 마시고, 양평서 개평 뛰고.

뭐 개평? 너는 노름도 좋아하는구나.

예끼, 이 녀석 노름은커녕 엿방맹이도 못한다.

아니, 그러면서 개평은 떼어?

이 바보 같은 놈아, 양평서 경기 개평으로 갔다 이 말이여.

오라, 양평에서 가평으로 뛰었다 그 말이지?

아따, 그놈 새김질 한번 잘한다. 거기서 다시 두 내외만 사는 동네를 찾아갔지.

이번엔 양주로 갔다 이 말이지? 그래, 그 담엔 또 어디로 갔나?

이번엔 양주 땅에서 가마골을 넘어 파주 고랑포에 가서 나루를 탔는데.

고랑포에서 배를 탔겠지.

맞았다. 배를 탔지. 타고 보니 사공이 여자데 그려.

사공이 여자라면 네가 여자 배를 탔단 말이지?

이런 숭헌 놈, 그럼 너는 남자에 배만 타냐? 여자에 배는 싫어하고?

에라, 이 흉측헌 녀석. 한 대 맞아라! 그래, 배를 타고 어디로 갔단 말이냐?

그 배를 타고 임진강을 건너 개풍동을 지나 개성으로 들어섰지.

개성. 그래, 개성엔 명승고적두 많다는데 너도 그걸 봤겠구나.

보다 뿐이냐?

그래, 무엇 무엇을 보고 왔는지 어서 냉큼 빨리 얘기해봐라.

아따, 그 녀석 성질도 급하긴. 그러다간 산 놈에 돼지 꼬랑지 붙들고 순댓국 달라겠네.

그래, 뭘 그렇게 많이 봤나?

저 남문 밖 떡전에 들어가서 송기떡, 수리떡, 빈대떡두 보구, 술청거리에 가서 약주, 탁주, 인삼주에, 돼지새끼 삶아 놓은 애저에다 곁들여 먹기 좋은 보쌈김치, 잣김치, 나박김치도 보구 왔다.

이런 처먹다 망할 놈을 봤나? 아니 그래, 그게 겨우 명승고적이냐?

이놈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면서?

아무튼 밤이 이슥하도록 애오개 놀이패의 발탈 마당이 계속되었고, 이어서 다른 패거리들이 잡가의 신곡을 불렀지만 관객들에게 흥취는 별로 주지 못한 것 같았다. 이신통은 대번에 발탈의 사설을 직접 만든 재담꾼으로 한양 일대의 광대들에게 소문이 나게 되었다. 대보름 사계축놀이가 끝나고 일대의 장사꾼 공쟁이들의 계에서 걷어준 놀이 행하를 받아 뒤풀이 겸하여 문안으로 놀러가기로 하였다. 박삼쇠가 자기 단골집이라면서 수표교 일대의 색주가로 패거리를 데려갔는데, 이번에 발탈을 함께 놀았던 조대추와 잽이 역할의 이신통이며 칠패와 애오개 토박이 소리꾼 두 사람이었으니 그만하면 교자상 한 상 차려놓고 조촐하게 마실 만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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