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뛰고 쏘고 치고 박고 다시 또 달린다. 비디오게임 속 공간처럼 인공적이고 온기 없는 미래 도시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내는 끊임 없이 장소를 옮겨 가며 로봇처럼 무감각한 악당들과 요란한 싸움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15일 개봉하는 '토탈 리콜'의 원작은 SF 소설의 대가 필립 K 딕의 단편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1990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한 동명 영화와 혈통은 같지만 살아온 배경이 전혀 다른 형제 사이다. '언더월드' '다이하드 4.0'의 렌 와이즈먼 감독이 원작 소설을 21세기형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로 재해석했다.
이야기의 뼈대는 원작과 대동소이하다. 공장 노동자 더글러스 퀘이드(콜린 패럴)는 단조롭고 초라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환상을 현실 같은 기억으로 이식시켜주는 업체인 '리콜'을 찾는다. 현실과 환상이 중첩되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경고를 듣기 무섭게 기억 이식 과정에서 사고가 생기고, 퀘이드는 자신의 삶이 위조된 것이며 원래는 비밀요원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토탈 리콜'의 공상과학적 설정은 원작이나 폴 버호벤 감독의 1990년 버전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흥미롭다. 여름 시즌용 SF 액션 영화답게 볼 거리도 풍성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시키는 디스토피아적 도시 디자인과 '스타 워즈' 클론 트루퍼의 판박이인 안드로이드 부대, 영화 '본' 시리즈를 참고한 듯한 육탄전까지.
하지만 영화는 원작의 철학적인 상상력을 증류시킨 다음 그 빈 자리를 부산스러운 액션 시퀀스의 사슬로 채웠다. 등장인물들은 유머 한 톨 없이 무미건조하고, 국면 전환은 비디오게임처럼 기계적으로 이어진다. 배경도 지구와 화성을 오갔던 슈워제네거의 영화와 달리 지구 밖을 나가지 않는다.
원전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토탈 리콜'은 별 생각 없이 시간 때우기에 좋은 영화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화려한 장식과 생기 있는 캐릭터, 똑똑한 유머, 약간의 유치함과 존재론적 질문이 공존했던 첫 번째 '토탈 리콜'은 아예 잊거나 모르는 게 낫다. 15세 이상 관람가.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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