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양육수당 월 10만원"… 부모 희망 수준엔 턱없이 부족
서울 강동구에 사는 주부 최모(29)씨는 첫째 아이가 18개월째 되던 지난해 말부터 아이를 집 근처 어린이집에 보냈다. 당시 둘째를 임신 중이어서 첫째까지 혼자 키우기가 힘에 부쳤고 무엇보다 아이 지능과 정서 발달을 위해 엄마가 집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이가 돌이 지난 후부터 백화점 문화센터에 데려가 영아들을 위한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五感) 발달 프로그램'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뿐이고 수강료는 부담스러웠다. 마침 최씨 가구는 소득하위 70%에 속해 보육료도 전액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해 그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며 매달리던 아이도 이제는 어린이집 친구를 꽤 사귀었다.
최씨는 양육수당을 주면 아이를 다시 집에서 키울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단호히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계속 엄마와 둘만 있는 것보단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는 어린이집에서 사회성 등 배우는 게 많을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엄마가 일을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많이 되죠." 최씨는 지난달 태어난 둘째 아이 양육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 있지만 주변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엄마들이 많다. 최씨는 "요즘엔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전문점에서 낮 시간대에 주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데가 많아 주로 그런 곳에서 일한다"며 "잠시 육아에서 벗어나 여가활동을 하는 엄마들도 많다"고 말했다.
만 0~2세 영아를 집에서 기르는 부모들이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은 단 하나다. 바로 양육수당이다. 차상위계층(소득 하위 15%)에 한해 자녀가 0세이면 월 20만원, 1세 15만원, 2세 10만원을 지원받는다. 내년부터는 소득하위 70% 가구에 영아 연령과 상관없이 월 10만원의 양육수당을 지급하기로 보건복지부는 잠정 결정했다. 정부가 보육시설 이용 영아 위주로 지원정책을 펴면서 가정양육 영아는 너무 소외돼 왔다는 비판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올해 보육료 지원대상 확대로 인해 급증한 영아의 보육 시설 이용률도 양육수당 지원을 통해 다시 끌어내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양육수당이 어린이집을 선택한 부모들의 마음을 되돌리거나 가정양육을 하는 부모들에게 양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는 점이 문제다. 먼저 현 수준의 양육수당은 가정양육으로 전환하는 유인책이 전혀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만 0~2세 영아를 키우는 부모 96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 10만~20만원의 양육수당을 지원할 경우 어린이집 이용을 중단하고 집에서 양육하겠다는 부모는 20명 중 1명(4.5%)에 불과했다. 부모 10명 중 9명(93.8%)은 계속 어린이집을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양육수당을 보육료 수준(0세 월 39만원, 1세 35만원, 2세 28만원)으로 올려준다 해도 가정양육을 택한 부모는 23.9%뿐이었고 70.7%가 어린이집 계속 이용을 택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또 다른 연구보고서 '양육수당의 가능성과 한계'에 따르면 양육수당 인상시 어린이집 이용을 중단할 생각이 있는 부모들이 희망하는 월 평균 양육수당은 47만원이었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10만원과 4배 넘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수당을 높이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어린이집 이용률을 줄이려면 양육수당이 보육료 지원금에 비견될 만큼 충분히 많아야 하지만, 너무 많은 금액이면 여성들이 아예 직장을 그만두게끔 만든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기획조정실장은 "정부안대로 소득하위 70% 가구에 월 10만원씩 지급한다면 가정양육을 하는 엄마들에게 심리적인 위안효과는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어린이집 쏠림 현상을 막는 동시에 여성의 근로의욕도 저하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월 25만원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당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다. 부모들은 비용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조사에서 부모들은 영아를 보육시설에 보내는 가장 큰 이유로 '사회성 발달'(39.9%)을 꼽았고 '전인적 발달'도 23.1%나 됐다. 특히 '돌보기 어려워서'도 25.1%나 됐다. 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하더라도 엄마의 양육을 보완해줄 보육 프로그램과 시설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육시설 외의 육아 인프라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양육수당만 달랑 주는 것은 '돈 줄 테니 애는 알아서 키워라'라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백 교수는 "일본은 집에서 영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만나서 정보를 공유하고 양육 교육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운영해 이용률과 만족도가 매우 높으며, 정부도 엄마들의 육아 스트레스 해소를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며 "우리나라 엄마들에게 필요한 것도 돈이 아니라 육아를 도와주는 다양한 시설과 제도"라고 강조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 영아 키우는 엄마들 목소리
"비싸지 않은 일당에 믿고 맡길 수 있는 파트타임 가사도우미가 필요해요."
27개월 된 딸과 10개월 된 아들을 둔 주부 강모(34)씨가 설거지와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시작하는 건 남편이 퇴근한 오후 7~8시 이후다. 뒤돌아서면 사고 치는 아이들 때문에 한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서다. 낮에는 아이들과 노느라 진이 빠지고 저녁에는 집안일 하며 녹초가 되는 강씨는 "하루 두어 시간만 집안일을 거들어주는 가사도우미 서비스가 보편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돈만 내면 가사도우미는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시간당 1만원, 한나절 4만원 이상의 비용이 부담이 된다. 취약계층은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지만 강씨와 같은 중산층도 영유아가 있는 경우에 한해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다 보니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다. 강씨는 "지자체 등에서 검증된 가사도우미를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23개월 된 막내 아들을 포함해 아이 셋을 키우는 주부 김모(28)씨는 지난 1월, 5년 간의 가정주부 생활을 끝내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공백 기간이 길었던 터라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취업 정보도 부족하고 관련 기술이나 자격증도 없었던 것. 지역 신문에서 공고를 보고 소규모 인테리어 업체 경리로 일을 시작한 김씨는 결국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한 달 만에 일을 그만뒀고, 두 달 뒤 시작한 보험설계사 일마저도 적성에 맞지 않아 얼마 전 그만뒀다. 김씨는 "가정에서 아이만 키우면서 경력이 단절된 엄마들을 지원하는 탄탄한 취업 프로그램과 직업 소개 창구가 간절하다"고 말했다. 직장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1~2년 정도 직접 키우고 싶어도 경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 결국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직장으로 향한다.
육아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원하는 초보 엄마들도 많다. 7개월 된 딸을 둔 윤모(26)씨는 올 초 아이와 단둘이 있을 때 갑자기 열이 나거나 울음을 터뜨리면 어쩔 줄 몰랐다. 이유식으로 뭘 먹이면 좋을지도 늘 고민이었다. 윤씨는 "동사무소 등에서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거나 출산 예정인 주부들을 대상으로 육아 교실이나 소모임을 만들면 육아에 자신감도 생기고 부담도 덜 할 것"이라며 "실시간으로 육아 관련 상담이나 멘토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콜 서비스도 보편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6개월 된 딸을 키우는 주부 정모(27)씨는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답답하거나 우울함을 느낄 때가 많다. 정씨는 "스트레스나 우울증이 걸릴 위험이 높은 엄마들의 정신 건강을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치료해주는 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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