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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쟁]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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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쟁]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

입력
2012.08.0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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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 전문의가 응급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가 5일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 제도는 응급실 근무 의사가 1차적으로 환자를 진료한 뒤 다른 과목 진료가 필요한 응급환자라고 판단된 경우 해당 과목 당직 전문의에게 소위 '온콜'(비상진료체계) 진료를 요청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만일 당직 전문의가 응급실에 오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고 면허정지 처분까지 내릴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실에서 제대로 진료받지 못하는 응급환자와 보호자들의 불만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허점 투성이 시책이라는 것이다. 당직 전문의가 병원에 상주하지 않아도 되거나, '온콜'을 받은 당직의가 얼마 만에 응급실에 도착해야 한다는 세부 규정조차 없다. 이 때문에 제도 시행 후 병원 곳곳에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고문은 "우리나라가 민간 의료 중심이지만 응급의료만큼은 국가가 책임지는게 맞다"면서도 "시행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들을 빨리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양동 경남도의사회장은 제도 시행 자체가 무리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모든 응급실에 당직 전문의를 두게 하는 것 보다 응급 의료 전반을 정교하게 관리 운영하는 컨트롤타워를 마련하는 응급 시스템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 찬성

"응급의료 사각 해소 위한 법적 규제 필요…전문의 병원 상주 의무화 등 보완해야"

5일부터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도가 시행 중이다.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도의 발단은 2010년에 대구에서 발생한 장중첩 여아의 사망 사건이었다. 장중첩증에 걸린 4세 여아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대학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구미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치료받던 중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현 응급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을 대폭 개선하라는 국민여론과 요구를 반영해 만든 제도이다.

사건 당시 대구에는 응급의료법에 의해 지정된 응급의료센터가 6개소나 있었고, 모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당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어느 곳 하나 지키고 있는 곳이 없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응급의료센터가 응급환자의 진료를 1, 2년차 전공의에게 일임한 채 관행적인 당직행태를 운영하면서 전문의에 의한 비상진료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개정은 이 같은 관행적인 시스템을 개선해 살릴 수 있는 응급환자를 살리고자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병원장과 의사들은 반대하고 있다. 병원장들은 현실을 무시한 규제라며 응급센터 지정을 반납하겠다고 하고, 전공의들은 과도한 업무가 더욱 가중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전문의 인력 부족, 전공의 업무 과중 등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의 요구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환자를 살리는 응급의료만큼은 매우 특별한 경우로 다뤄져야 한다. 일상적으로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언제 어디서라도 응급상황에서 놓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문의 등이 없는 야간 응급센터는 밤의 뒷골목보다 더 위험한 사각지대다. 생사가 달린 응급상황에서 병원에 상주하는 전문의로부터 적절한 의료를 받는 기본적인 권리와 국가가 보장해야 할 사회안전망임을 생각할 때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는 거스를 수 없는 국민의 요구이다.

모든 과목의 전문의가 당직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생명을 다루는 최소한의 과목만큼은 전문의가 병원 내에 상시 대기하도록 함으로써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지체 없이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응급센터에 어떤 과목의 당직 전문의가 있는지, 당직 전문의가 누구인지를 응급환자와 가족은 물론 지역사회 시민이 언제든지 알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복지부가 개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각계의 의견수렴과 제도 보완 과정을 거치는 통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대한병원협회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여 시행규칙안을 전면 수정했다는 점이다. 애초의 시행규칙안에 따르면 당직은 전문의뿐 아니라 3, 4년 차 전공의를 포함했다. 전문의만으로 당직을 서기엔 병원 의사인력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공의를 포함할 경우 전문의는 당직을 서지 않고 모든 당직근무가 전공의에게만 떨어질 것을 우려해 전공의 당직은 연중 3분의 1을 넘지 않도록 했다. 전문의 부족, 전공의 수련 현실을 반영한 제도 시행안이었다.

그러나 개정안을 보면 일방적인 당직 개념과 달리 당직자의 병원내 상주를 의무화 하지 않았고, 전문의 당직제도를 위해 병원이 비상 호출체계를 구축하도록 하였을 뿐 응급 센터 현장에서 발생할 상황을 대비하는 세부 지침이나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병원의 자율에 맡겨버렸다. 또한 위급하고 중한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기피하는 역효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위급하게 생명을 맡긴 응급환자의 처지를 외면하고 의료 제공자인 병원과 의사의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법률의 개정취지를 훼손한 것이다. 각계 각층의 요구를 수렴하고 보완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복지부의 몫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할 복지부가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은 방치한 채 병원 측의 손만 들어주고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단 제도를 시행한만큼 이제부터라도 복지부는 시행실태를 파악하고 대책 마련을 위해 '전문의 당직제도 개선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위원회에는 병원협회, 의사협회, 전문가는 물론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를 포함해야 하며, 응급환자 생명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본래의 입법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고문

■ 반대

"모든 병원 대기조 운영은 고비용저효율…환자이송서 치료까지 시스템 정비부터"

현재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영아사망률과 기대여명의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상위를 차지한다. 총체적으로 합격점을 받을만하다. 그래도 응급환자 얘기만 나오면 정부당국이나 의료계는 머리를 들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구나 지난해 4세 어린이가 장중첩 증세로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한 예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 뇌출혈 환자가 수술 가능한 병원을 찾아 다니다 의식불명에 빠진 일도 있었다.

전반적 건강지표는 좋은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시스템 불비나 운영 미숙으로 진료 공백이 가끔 생긴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해법은 두 가지다. 기존 제도의 운영을 강화하는 것이고, 아니면 새로운 제도를 만들면 된다. 아마 위의 사례에 자극을 받은 어느 국회의원은 의원입법을 통해 후자를 택한 것 같다.

입법 의도는 모든 병원 응급실에 모든 전문과목별 전문의가 곧바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강제한다면 해결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환자의 호출전화, 119의 전화 응답과 환자 이송, 병원의 치료로 나누어 각기 책임의 한계를 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점은 개별 응급환자의 다양한 특성을 외면하고 환자 이송을 기계적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그 환자에 맞는 그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으면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흔히 최선이라고 하는 것은 무얼 말하는가. 그것은 '주어진 여건'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환자는 반드시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환자가 제대로 기획된 이송 도중 사망했다면 그 환자는 일단 응급시스템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객사한 게 아니라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추구하다 그렇게 된 것이다.

응급환자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제대로' 이송하는 일이다. 관련 상세 정보를 정교하게 관리 운영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즉 여러 의료기관들의 응급환자 수용 가능성 여부, 그리고 이 정보를 환자나 이송 담당자들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다양한 질병과 불안정한 응급환자를 가장 잘 치료할 수 있고, 또 이 목적에 맞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이송하는 걸 가능케 해야 한다. 이 정보를 시시각각 정밀하게 파악하고 적절히 분배하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

일찍이 한국에도 그런 기구가 있었다. 1989년엔 적십자사가 운영하던 긴급전화 '129', 2000년에 시행한 응급의료정보센터('1339')가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올해 슬그머니 '119'에 통합해 전화 받고 환자를 이송하는 것으로 업무를 단순화했다. 환자를 위한 제도나 행정이 아니라 행정편의를 위한 시스템이다. 현행법대로라면 병원은 응급실을 운영하는 데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모든 병원은 많은 인력과 시설을 3교대로 24시간 대기시켜야 한다. 게다가 의료인들은 1년 중 대부분의 밤과 낮을 5분 대기조로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이것은 '고비용 저효율'로 성공하기 어렵다.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얘기가 있다. 맞는 말이다. 이런 주장만이 정답이라면 우리는 응급이든 아니든 이 사회의 모든 자원을 환자를 위해 투입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응급환자 나아가 건강관리정책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이다.

그런데 시설이 부족해 응급환자가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다. 의료인들이 이기적이라 환자들이 불행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현행 제도의 보완과 강화에서 최선의 해답을 찾고자 한다. 제대로 된 이송이 가능하도록 상설기구를 운영하면 된다. 하드웨어엔 의료인, 의료장비와 시설, 구급차, 정보교환시설 등이 있다. 소프트웨어라면 거론된 하드를 섬세하게 상설 운영하는 걸 말한다. 바로 이 소프트가 필요하다.

법의 권위를 차용해 우격다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현행법을 폐지하든가 대폭 개정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행정지도로 책임을 묻게 다는 사고방식으론 희생자를 늘리고 갈등만 키울 뿐이다. 응급환자의 매끄러운 관리야말로 선진국을 지향하는 한국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박양동 경남도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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