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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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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3>

입력
2012.08.07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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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청파놀이패의 재담꾼이 나와서 마당 씻는 사설을 풀고 나서 선소리꾼이 몇 마디 주고받은 뒤에 산타령으로 판을 열었다.

나니나 산아지로구나 어뒤여나에 나나지루 산이로구나

오수산 십일봉은 은자봉이 둘러 있고

도령청대 거자봉은 옥계수가 둘러 있다

수락산 폭포수요 동구재 만리재라

약잠재 누에머리 용산삼개가 둘러 있다

동소문을 내달아 문 넘어 얼른 지나

다락원서 돌쳐보니 도봉망월에 천축사라

동불암 서진관 남삼막 북승가요

우연히 잠두에 올라 한양성내 굽어보니

인왕삼각은 용반호거세로 북국을 고여 있고

한강종남은 여천지무궁이라

이어서 만리재 놀이꾼이 나와서 산타령을 받는다.

오봉산 꼭대기 에루화 돌배나무는

가지가지 꺾어도 에루화 모양만 나누나

에헤요 어허야 영산홍록의 봄바람

도봉산 만경봉에 백학이 춤추고

단풍진 숲속엔 새 울음도 처량타

그윽한 준봉에 한 떨기 핀 꽃은

바람에 휘날려 에루화 간들거리네

삼각산 꼭대기 채색구름이 뭉게뭉게

만학의 연무는 에루화 아롱아롱

백운대 암벽에 홀로 섰는 노송나무

광풍을 못 이겨서 에루화 반춤만 춘다

인왕산 마루다 국사당 짓고

임 생겨지라고 노구메 정성을 드리네

삼청동 골짜기 졸졸 흐르는 시냇물

꽃 피고 새 울어 심신이 쇄락해지노라

에헤요 어허야 영산홍록의 봄바람

사설시조에 가곡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소리꾼들이 나와 기량을 다투었으며 각 패가 준비한 재간들을 한 가지씩 선보이는 자리가 되었는데, 애오개패가 처음으로 발탈을 준비하니 모두들 신기하여 바라본다. 먼저 검은 장막을 치고 뒷전에는 발탈 놀이꾼으로 박삼쇠와 조대추가 긴 널판 의자를 비스듬히 놓고 두 발에 탈을 씌워 내밀었고 악사들 앞에는 이신통이 장구를 잡고 맞대거리 잽이 노릇을 맡았다.

어흠, 어흠, 여기 사람이 많이 모였군. 여기 누가 주인이오?

내가 주인이요. 당신은 웬 사람이오?

왼 사람이라니, 아니 내가 조그마하니까 토막을 낸 줄 아슈? 왼 사람이냐구 묻게.

당신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

나는 팔도강산 유람차 다니는 사람이오. 우리 인사나 합시다.

당신 보자허니 멋깨나 들었겠구려. 나는 이 마포 강변 사는 어물도가 주인이오.

멋도 들었지만 모르는 거 빼곤 다 잘 알지.

모르는 거 빼곤 다 잘 안다. 그럼 강산 유람을 다녔으면 시조장이나 알겠군.

시조장이라니, 시조가 무슨 물건인가? 장에 있게. 시조 마디지.

하하 이 사람, 그럼 시조 한 마디 해보구려.

하라면 못 할 줄 알고?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허니 쉬어간들 어떠리

허허, 거 시조 하는 걸 보니 춤마디나 추겠는데?

허허, 이것 좀 보게. 춤이 마디가 어디 있어? 가락이지.

오라, 춤은 가락이지. 그럼 춤 한 가락 보여주지.

아따, 그 사람 거 골고루 보자네 그려. 만장단을 쳐라!

허허, 거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더니 생긴 꼴보다는 소리도 좋고 춤도 제법일세. 거 이제부터 우리 말을 놓고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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