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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여성국극, 마지막 배우와 함께 스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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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여성국극, 마지막 배우와 함께 스러지다

입력
2012.08.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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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연극사에서 1950년대는 여성국극이 풍미한 시대였다. 여성국극은 남자 역할도 여자가맡아 남장하고 나오던 창극으로 당시 인기가 대단했다. 여성국극에 미쳐 여성국극단에 들어가거나 광팬이 되어 공연을 따라다니느라 가출하는 여성이 속출했던 시절도 있었다. 남자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남장 배우들에 반한 소녀들이 혈서로 연애편지를 써 보내는 일은 아주 흔했고,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로 극장 주변이 미어터져 기마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60년대 들어 라디오와 영화가 보급되면서 급격히 쇠퇴해 지금은 맥이 거의 끊어졌다.

50년대 여성국극의 최고 스타 중 한 명인 조금앵씨가 3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났다. 부고조차 거의 안 알려졌지만, 한창 때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여성국극에서 남자 역을 주로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고 칼싸움 등 액션에도 능했던 그를 흠모한 여성팬의 간청에 가상 결혼식을 올린 일화는 유명하다. 여성국극을 함께 했던 고인의 동생 조성실(80)씨 회고에 따르면, 전남 여수에서 공연할 때 찾아온 그의 극성 팬은 이미 결혼한 부인이어서 남편이 오해를 했다가 ‘신랑 조씨’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화를 풀었다고 한다.

고인은 1930년 서울 종로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판소리로 유명한 조농옥, 살풀이춤으로 알아준 조농월이 첫째, 둘째 언니이고 배우 조춘이 남동생이다.

고인의 무대 인생은 열세 살 때인 43년 언니 조농옥이 활동하던 동일창극단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이후 48년 판소리 명창 박녹주가 만든 여성국극동호회로 옮겼고, 이듬해 여성국극의 대모 임춘앵이 이끌던 여성국악동지사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50년대 들어 스타덤에 올랐다. 여성국극 히트작인 ‘햇님달님’을 비롯해 ‘황금돼지’,‘쌍둥왕자’, ‘콩쥐팥쥐’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햇님달님’을 공연할 때 부친상을 당했으나 주연 배우로 워낙 인기가 높아서 극단이 부고 전보를 늦게 전해주는 바람에 장례 참석도 못했다고 한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조성실씨는 “돈을 밟고 다닐 만큼 대박이 났던 공연”이라고 회고했다.

고인은 1남 2녀를 뒀다. 말년을 경기 수원의 아들 집에서 보내던 그는 건강이 좋아 2년 전까지만 해도 간간이 무대에 섰으나 겨울 눈길에 미끄러진 뒤 몸이 불편해 누워 지내다 무더위에 욕창이 악화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수원 성 빈센트병원에 차려졌으며, 7일 발인 후 경기 벽제의 모친 묘 옆에 안장됐다.

고인과 여성국극을 했던 왕년의 스타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여성국극의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도 이제 별로 안 남았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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