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무용단에서 주역 및 솔리스트로 활약하는 한국 무용수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하지만 발레에 한정된 이야기다. 기교뿐 아니라 무용가의 정서적 경험이 반영되는 현대무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세계적인 안무가 알랭 플라텔이 이끄는 벨기에 세드라베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예효승(38)씨의 행보가 눈길을 끄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현대무용의 메카로 불리는 벨기에에서도 특히 주목 받는 이 단체와 2005년 연을 맺었다. '저녁기도'라는 작품의 공개 오디션에서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뒤 꾸준히 이 무용단 공연에 출연해 왔다. 정규 단원 없이 안무가 중심으로 운영되는 세드라베는 공연마다 10여명의 정예 멤버에게 우선 출연을 제안한다. 그도 그 중 한 명이다.
세드라베의 내한 무대와 한국공연예술센터 기획 공연 등에 출연했던 그가 이번에는 안무가로 이름을 내건 신작 '라이프'를 25, 2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올린다. 예씨는 6일 기자와 만나 "솔직 담백한 무대로 현대무용도 발레 못지않게 흥미를 가져 볼 만한 예술임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발레는 잘 알려진 작품을 일정 기간 차례로 바꿔 가며 공연하는 레퍼토리시스템이 자리를 잡아 친숙하게 느끼는 관객이 많아요. 하지만 단체와 안무가마다 각기 다른 색깔을 내는 현대무용은 난해한 '그들만의 잔치'로 여기는 분이 대다수죠. 그래서 관념적이지 않고 희로애락을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
그는 "남자로서는 흔하지 않은 전공이라 호기심이 일어" 늦은 나이인 고교 2학년 때 무용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서울현대무용단, 한국컨템포러리 무용단, 안애순 무용단, 일본의 파파 타라후마라 무용단 등에서 활동했지만 "유럽 활동 전까지는 (모두)단순한 삶"에 불과했다.
"오직 춤의 기교만 생각하던 제게 (유럽 무용계의)무용수와 안무가가 활발히 소통하면서 상상력을 더한 표현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각 무용수의 신체 특징에 맞춘 알랭 플라텔의 인간적인 안무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죠. 손가락이 긴 제게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살린 솔로 춤을 만들어 줬거든요."
예씨는 손과 팔의 각 부분을 꺾고 비틀어 표현한 춤을 많이 추기로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도 어김없이 손가락 쓰는 춤을 넣었다. "흔히 보는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도 좋은 현대무용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과도한 무대 연출은 일부러 피했다.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마치 컴퓨터 게임 하듯 의미 없는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겠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게임과 만화영화 주제곡을 변주해 배경음악으로 넣었다."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예술가는 대중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요. 하지만 관객이 있어야 힘을 얻는 게 예술이에요. 예술가가 관객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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