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최고의 육상스타는 단연 우사인 볼트(26ㆍ자메이카)다. 볼트가 가는 곳마다 그의 발 밑에서 신기록이 쏟아진다. 어떤 이는 볼트와 다른 주자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말과 사람의 대결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라고 표현할 정도다.
육상 100m, 200m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는 '트랙 위의 지존' 볼트도 단 한 사람 앞에 서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30ㆍ러시아)다.
'기록 제조기'로 통하는 볼트가 데뷔이래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은 7번. 이에 반해 이신바예바는 무려 28번(실외15ㆍ실외13)이나 세계기록을 경신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실내외 세계 신기록(실외 5m6ㆍ실내 5m1)도 이신바예바의 장대에서 나왔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여자장대높이뛰기 기록 리스트에 4m93~5m6을 넘은 선수론 오직 이신바예바의 이름만 올라있다.
하지만 이신바예바가 올림픽 3연패에 실패하고 동메달에 그치는 이변의 희생양에 맨 먼저 이름을 올렸다.
이신바예바는 7일(한국시간) 런던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선에서 자신의 최고기록보다 36㎝나 아래인 4m70에 머물러 동메달에 그쳤다. 미녀새가 날개를 접은 사이 제니퍼 수어(30ㆍ미국)가 새로운 장대 여왕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신바예바는 이날 경기 시작 전 왼 허벅지를 수 차례 어루만지며 코치를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주문을 걸듯 출발직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습관도 여전했다. 그러나 그것은 미녀새의 추락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4m55 1차 시기를 넘지 못했다. 자존심이 극도로 상한 이신바예바는 첫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4m55 대신 심판에게 4m60에 도전한 것. 이신바예바는 1차 시기에서 통과한 뒤 4m70도 거뜬히 넘었다. 하지만 이신바예바는 결국 4m75의 벽에 부딪쳐 날개를 접어야 했다. 이신바예바는 당초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됐다. 2003년부터 10년간 하늘을 날아 노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에서다. 이신바예바 자신도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뒤 물러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신바예바는 그런 전망을 뒤집고 4년 후 올림픽 재도전을 당당하게 밝혔다. 이신바예바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올림픽에서 동메달로 만족할 수 없다"며 이번 대회 부진 원인을 설명했다. 왼 허벅지 근육 부상으로 올림픽 개막 열흘 전까지 제대로 된 훈련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짧은 시간 뭔가를 바꾸기는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신바예바는 "원래 런던올림픽에서 은퇴할 생각이었지만 리우 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노려 보겠다"라며 "그곳에서 금메달을 따고 은퇴하겠다"고 궤도를 전격 수정했다.
이에 대해 육상 전문가들은 "이신바예바가 자신의 조국 러시아에서 열리는 20013년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은퇴 불가' 압력을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이신바예바도 "내 마음은 매일 바뀐다"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런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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