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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세 가정양육의 적(敵)들/ <중> 아기 잠깐 맡길 곳조차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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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세 가정양육의 적(敵)들/ <중> 아기 잠깐 맡길 곳조차 없어

입력
2012.08.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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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시간만 봐줬으면…" 일시 보육시설 갖춘 시군구 20%뿐

서울 광진구에서 9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주부 신모(29)씨는 치과에 갈 때마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친언니를 집으로 부른다. 결혼 전부터 치아가 좋지 않아 지난 2월부터 임플란트 시술을 시작했지만 병원에 가는 동안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은 지방에 살고 친한 친구들은 모두 직장에 다닌다. 친언니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데다 신씨 집까지 오려면 대중교통으로 2시간이나 걸려 번번이 부탁하기가 미안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신씨가 가장 힘들 때는 갑자기 치통이 몰려올 때다. 치통이 시작되면 자기 몸조차 제대로 추스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하지만 아이를 두고 병원에 갈 수가 없다. "치과 간호사에게 맡길 생각도 해봤지만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것 같고 다른 환자에게 맡기자니 혹시나 애를 데리고 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돼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어요." 결국 신씨는 엉엉 울며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남편은 상사 눈치를 보며 오후 5시쯤 조기 퇴근을 했다. 최근에 치통이 왔을 때는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계속 참다가 야간 진료를 받았다. 신씨는 "육아를 하면서 겪는 다른 어려움들은 다 감수하겠지만 내 몸이 아플 때는 정말 서럽다"며 "꼭 필요할 때 몇 시간만이라도 아이를 봐줄 수 있는 믿을만한 곳이 집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최소 24개월까지는 아들을 집에서 키우고 그 뒤 일자리를 다시 구할 생각이다. 하지만 취업 생각을 하면 걱정이 또 하나 늘어난다. "회사에 면접 보러 갈 때는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까요?"

보육시설은 맞벌이 부부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집에서 영아를 기르는 주부 엄마에게도 필요할 때 아이를 잠시 맡길 수 있는 일시 보육시설은 필수적이다. 엄마가 아프거나 경조사 등이 있을 때, 또 잠시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특히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이웃간 교류가 끊겨 육아가 오롯이 엄마의 몫이 되면서 가정 양육을 보조해 줄 공공 시설은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정부는 만 0~2세 영아에 대한 가정양육을 권고만 할 뿐, 정작 가정양육에 필요한 인프라를 만드는 데는 손을 놓고 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은 전국 모든 지자체가 영유아 육아를 위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육정보센터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정 양육을 하는 부모들에게 보육 정보 등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한 것으로 최근에는 일시 보육 서비스, 도서 및 장난감 대여, 육아정보 교류를 위한 육아카페 운영 등으로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16개 시도는 국고 지원을 받아 이 센터를 1개씩(경기도는 2개) 설치했지만, 전액 지자체 예산으로 설치해야 하는 전국 230개 시군구 중에는 46개(20%)만 설치했다. 전라 충북 부산 대구 등 9개 시도에는 아예 시군구 보육정보센터가 단 한 곳도 없다. 2010년 1월 법이 개정되며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2년 반이 지나도록 시군구 5개 중 4개는 설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기획재정부에 시군구에도 센터 설치 예산을 요구했지만 계속 반영되지 않고 있고, 지자체는 비용이 많이 드는 센터 설치에 별로 의지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 서비스' 역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정이 있을 때 시간제나 종일제로 보육도우미가 집으로 오는 제도지만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사용하기 힘들고 한부모 및 맞벌이 가정의 양육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 엄마가 집에서 양육하는 가정은 정부의 이용료 지원금도 받지 못한다.

정부는 0~2세 전면 보육료 지원을 내년부터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0~2세는 가정 양육이 바람직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가정 양육을 위한 인프라 확충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결국 가정 양육을 하는 가정은 모든 공적 제도에서 소외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엄마들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대신 일주일에 2,3번, 하루 4,5시간 등 사정에 따라 이용하곤 한다. 올해부터 정부가 0~2세 보육료를 지원하면서 가정 양육을 하는 엄마들이 어린이집으로 쏠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일시 보육시설이 없다는 점이었다. 갓난아기를 집에서 키우는 한 엄마는 "애 키우기가 귀찮아서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아니라 다른 일시 보육시설이 전혀 없고 육아 스트레스 등 가정양육의 어려움을 보완해줄 다른 제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며 "맞벌이도 아니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은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전문가들은 단시간 보육시설 등 다양한 제도 도입을 강조했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기획조정실장은 "가정 양육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각 시군구에 보육정보센터를 모두 설치하고 가정양육을 하면서 파견 보육서비스를 받는 아동에게도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며 "또 획일적인 종일제 보육시설 체계에서 벗어나 각 가정이 필요한 시간만큼 이용할 수 있는 단시간 보육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 서울 은평구 영유아플라자에 가보니

"1년 전 저라면 아이 둘을 데리고 병원에 갔겠죠.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시간은 두 배로 더 걸렸을 거예요."

2일 오후 3시 서울 은평구 구산동 은평구 영유아플라자 1층 시간제보육실. 3~4살쯤 돼 보이는 유아 3명이 보조 교사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다. 다섯 살, 22개월 된 딸을 둔 주부 김영주(35)씨는 병원 치료 때문에 2시간 동안 맡겼던 딸을 데리고 귀가하는 중이었다. 작년부터 1주일에 3~4시간씩 마트에 장보러 가거나 은행 업무를 볼 때마다 아이를 맡긴다는 김씨는 시간제보육실의 가장 큰 장점으로 '믿을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한꺼번에 다섯 명 이상 받지 않고, 상주하는 공익근무요원 2명까지 동원해 내부 청소를 깔끔히 하는데다, 교사들은 모두 보육교사 자격증 소지자라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다.

0~2세 영유아의 가정 내 양육 필요성이 커지면서 서울시에서 각 구(24개구 운영 중, 중구는 9월 개소 예정)에 설치한 일시 보육시설인 영유아플라자 내 시간제보육실이 주목 받고 있다. 만5세 이하 영유아를 1~4시간 동안 봐 줘 김씨처럼 잠깐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엄마들의 시름을 해결해 준다. 회원제로 운영돼 평소 육아상담도 받고 영유아플라자 내 도서관이나 장난감 대여점도 이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낯설어하지 않고 엄마들도 친정집처럼 편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다. 가격도 시간 당 3,000원으로 부담이 적다. 이용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다.

김호인 센터장은 "재작년 여름 문을 열었는데 지난해만 1,700여명이 이용할 정도로 호응이 높다"며 "요즘은 휴가철이라 줄긴 했지만 하루 20명 넘게 이용할 때도 있다"고 밝혔다.

2년째 보육실을 이용하고 있다는 주부 이옥희(38)씨는 "4살 난 아들을 키우면서 쉬고 싶을 때 잠깐 아이를 1층 보육실에 맡겨두고 도서관에 올라와 책을 읽으면 우울한 마음이 다 사라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아직은 구별로 1개씩만 있어 자동차로 한 시간 넘는 거리를 감수해야 하는 부모들이 있기 때문. 김호인 센터장은 "불광동이나 진관동에도 분원 형태로 보육실이 있으면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1억5,000만원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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