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70)씨는 서울 강남에 빌딩을 소유할 만큼 자수성가했다. 막노동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며 돈을 모아 '맛있는 걸 배 터지도록 먹겠다'던 어릴 적 소박한 꿈을 넘치도록 이뤘다. 그런데 올 들어 잠 못 드는 밤이 늘었다. 가뜩이나 경기는 불황인데 종합소득세율이 41.8%로 오르는 바람에 빌딩 임대소득에서 세금을 떼이고, 금융상품에 투자해 번 수익까지 세금이 매겨져 손에 쥐는 게 전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심 끝에 '세금을 아끼는 만큼 수익이 늘어난다'는 투자원칙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보유 현금 10억원과 임대수입(월 5,000만원) 전액을 즉시연금에 가입한 것이다. 10년 이상 유지하면 이자소득세가 없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게 즉시연금 상품의 매력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사망한 뒤 상속세까지 줄일 수 있으니 고령인 김씨 입장에선 금상첨화라는 판단이 섰다.
증시 불황이 길어지면서 기존 투자상품들이 죽을 쑤고 있다. 설상가상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증세 이슈까지 불거지자 부자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다. 주식거래 급감과 펀드 외면으로 고전하고 있는 증권사들이 이런 고민을 놓칠 리 없다. 올 들어 증권사들은 부자들의 절세 전쟁에 대리인으로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절세 상품에 특별판매나 고객사은행사 등의 포장을 입혀 부유층 사로잡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불황엔 절세가 가장 남는 장사'라는 호소가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우리투자증권의 경우 대표적인 절세상품인 물가연동국채의 올 상반기 판매가 지난해 하반기보다 182%나 늘었다. 대우증권은 지난해 상반기 100억원이 안되던 물가연동국채 판매 실적이 올 상반기에 무려 2,300억원으로 늘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의 국채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삼성증권은 올 6월말 현재 브라질국채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가까이 팔았고, 미래에셋증권의 판매 실적 역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하루 평균 주식거래대금이 반 토막이 난 걸 감안하면 엄청난 실적이다.
물가연동국채와 브라질국채는 대표적 절세 채권으로 불린다. 브라질국채는 현재 금리가 낮은 우리나라에 비해 액면이자가 높은데다, 38.5%의 세금을 떼는 다른 채권과 달리 비과세라 그만큼의 비용을 아껴 수익이 늘어나는 효과를 낸다. 물가연동국채는 말 그대로 원금 및 이자를 물가에 연동시켜 지급하는 정부 발행 채권이라 물가상승률이 높아질수록 비과세 수익이 늘어 투자수익률이 좋아지게 된다. 하지만 브라질국채는 환율 변동 위험에 노출돼 있고, 물가연동국채는 대체로 만기가 10년이라 돈이 묶이는 단점이 있다.
이밖에 저축성보험으로 분류되는 즉시연금과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인프라펀드, 선박펀드, 유전펀드 등 특정 목적의 펀드들이 한시적으로 분리과세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인기다.
그러나 대부분의 절세 상품이 고액 자산가나 장기적으로 돈을 굴릴 여유가 있는 투자자들에게 한정돼 서민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생소한 상품도 많아 선뜻 투자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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