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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링컨의 경선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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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링컨의 경선 전략

입력
2012.08.0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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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6대 대통령 선거를 여섯 달 앞둔 1860년 5월18일, 공화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시카고에서 열렸다. 대회장에는 대의원과 당원 1만2,000명이 참석, 건국 이래 가장 많은 군중이 모인 옥내 집회로 기록됐다. 경선 후보는 뉴욕주

지사를 지낸 상원의원 윌리엄 시워드, 오하이오주 출신 상원의원 새먼 체이스, 일리노이주의 변호사 에이브러햄 링컨 등 모두 4명이었다.

1차 투표는 명망과 경륜에서 앞선 시워드가 선두를 차지했다. 그러나 과반 득표에 못 미쳐 2차 투표가 예정됐다. 지레 승리감에 겨운 시워드 지지자들은 거리로 몰려나가 축하 행진을 벌였다. 그 바람에 대회장 밖에 있던 링컨 지지자들이 빈자리를 메웠다. 검은색 정장차림 남성들과 긴 드레스에 보닛을 쓴 여성 지지자들까지 의자에 올라서서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를 외쳐 대회장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링컨의 참모들은 대의원들과 즉석 흥정을 벌였다. 시골 우체국장에서 국무장관에 이르는 임명직 자리 약속을 대가로 지지를 얻는 엽관(獵官) 거래였다. 링컨은 "공직 거래는 절대 안 된다"고 되뇌었다. 그러나 그땐 그게 관행이었다. 2차 투표도 시워드가 박빙 차이로 앞섰으나 3차 결선투표에서 체이스 후보의 지지를 얻은 링컨이 압승을 거뒀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대통령감이 그렇게 탄생했다.

그러나 링컨은 그날 전당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향 스프링필드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보로 승리 소식을 들었다. 후보 수락 연설이나 메시지도 없었다. 경선 과정에서 분열된 당의 단합을 위해서였다. 승리의 감격을 스스로 억누르고, 패배한 후보들과 그 지지자들을 배려한 것이다.

그 해 11월 대선에서 당선된 링컨은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기용했다. 또 삼고지례(三顧之禮)를 다해 시워드를 국무장관으로 영입했다. 이른바 '라이벌 내각(Team of Rivals)'이었다. 노예해방 문제로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통합의 정치를 위한 노력이었다.

흔히 민주주의 선거는 정치 엘리트와 유권자의 대화라고 말한다. 공직 후보자의 사람 됨됨이와 비전 정책 등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유권자들은 관심과 지지 또는 무관심과 반대를 표명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출된 후보자는 국민의 위임(popular mandate)을 받은 것으로 본다. 이게 민주 선거의 핵심, 정통성의 근원이다.

링컨이 경선 전당대회에 불참하고도 대선 후보가 된 것은 전국 유세를 통해 유권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때문이다. 볼품없는 용모에도 불구하고 노예 해방과 국민 통합을 위한 단호한 의지를 설득력 있게 피력, 명망과 경륜이 앞선 후보들을 경선과 대선에서 잇따라 눌렀다. 애초 불리했던 남북전쟁을 끝내 승리로 이끌고 국민 통합을 이룬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에 우뚝 선 바탕이다.

며칠 전, 미국의 인터넷신문 허핑턴 포스트의 아리아나 허핑턴은 칼럼에서 대선 후보 경선의 타락을 개탄했다. 민주ㆍ 공화당을 가림 없이 실업과 불황, 재정위기 등 국가적 이슈 논쟁보다 경쟁 후보의 과거 실책과 실언 등 흠집 잡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제법 번듯한 후보들이 하나같이 초라하고 왜소한 몰골로 비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천박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소모적 참호전(trench war)에 비유했다. 승리의 기약도 없이 참호 속에 웅크린 채 서로 수류탄 던지기 공방에 매달리는 것은 유권자들의 절박한 기대를 배반하는 짓이다. 이런 양상은 유권자를 위한 선거 캠페인에 유권자들이 흥미를 잃게 하고 기성 정치 혐오를 부추긴다. 그 결과는 과거 로스 페로처럼 정치권 밖 제3 후보 돌풍을 부르거나, 새 대통령의 정책 수행에 긴요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게 한다. 지금 우리 정당들의 대선 후보 경선이 바로 그런 꼴로 흘러가고 있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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