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 온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한국의 학교는 군대와 무척 닮았다. 아니, 그 축소판이다. 학교의 운동장은 군대의 연병장을, 조회대는 사열대를, 정문은 위병소를 각각 본뜬 것이다. 여기서 이 주제를 다룰 생각은 없지만 한 가지 말해 두고 싶은 것은, 그 동안 학교는 군대 못지않은 인권 침해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었다'라는 과거형 동사를 사용한 것은 그나마 최근 들어 학생인권조례 등의 영향으로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병이 장교에게 충성하듯이 학생이 교사에게 복종하는 것이 당연한 미덕으로 여겨지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학교에서 교사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영화 '친구'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유명한 교사의 폭행 장면은 과거 학교의 현실을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보수 언론이 '교권 추락'이라고 부르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이런 과거에 대한 일시적인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지금 겪고 있는 과도기가 지나면 과거보다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억눌렸던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 잠시 유희에 탐닉하다가 다시 공부에 몰두하는 것처럼.
학생의 시각은 지나치게 보수 언론이 제시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 학생은 "요새 분위기가 선생님을 존경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옛 은사의 말을 인용했지만, 과거에도 폭력을 휘두르거나 촌지를 받는 교사들은 학생들의 존경을 받지 못했다. 반대로 과거에 학생들의 존경을 받은 교사들은 최근의 학교 분위기를 반대할 리가 없다. 학생은 체벌을 금지하는 것이 "사제 간의 신뢰성에 큰 금이 가게 한다"고 주장하지만, 논리적 허점이 있다. 폭력의 행사가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를 신뢰하게 한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럼 교사가 폭력으로 학교 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 사제 간 신뢰가 꽃피게 된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학생은 최근 바뀐 교육 환경이 학생 지도를 어렵게 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체벌을 유일한 교육적 수단으로 삼았을 경우에만 타당한 말이다. 학생을 지도하는 방법에는 여러 수단이 있을 수 있는데 다른 대안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체벌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최근의 교육 환경이 교육제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것이라는 학생의 주장 역시 타당성을 인정하기 힘들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학교에서 일체의 체벌이 금지된 유럽 국가들은 이미 공교육이 파탄 났어야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권 추락'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갇혀선 안 된다. 요즘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학생이 교사에게 체벌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가던 시절, 그것을 두고 '학생인권 추락'이라고 보도하는 언론은 없었다. 그럼 의미에서 체벌 금지나 학생인권조례는 학교에 민주적 문화를 착근(着根)시키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정에 있다.
물론 다른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체벌이 먼저 금지되어 학교 현장이 일시적으로나마 혼란을 겪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제도적ㆍ인식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학생의 지적은 타당하다. 다만 학생이 제도적 개선책을 제시한 부분에서는 대안 개발을 촉구하는 주장만 있을 뿐 구체적인 대안의 내용이 생략되어 있어서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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