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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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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2>

입력
2012.08.0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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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었다! 보아허니 상투는 틀었으되 수염이 검숭드뭇하니 미삼십이 분명한즉, 우리 막내로 쳐줌세.

이제 설 쇠고 스물하나요.

하아, 좋은 때다.

바로 코 밑이 정월대보름이라 곧 사계축놀이가 열릴 판이라서 애오개패도 만사 제치고 습련에 들어갔다. 단오에는 산대놀이를 하기 마련이더니 녹번리산대, 애오개산대, 노량진산대, 퇴계원산대, 송파산대, 사직골 딱딱이패 등이 있었으니 모두가 탈을 쓰고 재담사설에 춤과 잡가로 연행되는 상민들의 놀이였다. 보통 해시 무렵에 시작하여 밤을 꼴딱 새우고 새벽까지 계속되는 큰판이라 단오나 추석 이외에는 감히 열지 못할 판이었다. 사계축놀이는 산대놀이처럼 밤새 노는 판은 아니었지만 주로 굿거리의 재담사설에 잡가 소리로 이어지는 식이라서 여러 패거리가 함께 모여 대경연을 벌이기에 적합했던 것이다.

역시 근기 지방이라 농투성이든 공장이든 어깨너머로 보고들은 문물이 많아 제각기 악기를 다룰 줄도 알았고 동네 굿판에서 놀며 거들어본 자들도 많았다. 피리, 젓대, 해금, 장구와 북에 꽹과리를 보통 삼현육각(三絃六角)으로 치는데 이와 구분하여 장구, 북, 꽹과리, 징, 새납 또는 날라리로 부르는 태평소를 합하여 풍물이라 부르고 길놀이나 농악이나 탈놀이를 놀 때에 서로 앞뒤로 넘나들며 합세하고 빠지기도 한다. 여기에 거문고, 가야금이 들어가면 그야말로 시나위 향악을 본격적으로 연주하게 되는 판이었다. 풍물이야 시골서 농악깨나 좀 놀아본 사람이면 제법 잡힐 줄 알고 피리 젓대와 해금은 음률을 익히면 한두 해에 맞출 수 있으며 거문고 가야금은 선생을 모셔두고 몇 해는 배워야 하는 법이었다. 아무튼 사계축놀이의 기본 기량은 가곡, 가사, 시조에 잡가가 기본이며 경쟁에 나서는 패는 열 명 이내였다. 선소리꾼이 모갑이가 되어 패를 이끌었다. 이들 중 흥이 과한 자들이 본래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재간이 뛰어난 자들을 묶어 이십여 명의 패를 이루어 지방 공연을 하며 떠돌기 마련이었다. 아무튼 박삼쇠네 놀이패에 들게 된 이신통은 처음에는 시골서 눈치로 익힌 대로 북이나 장구를 잡고 소리에 간간히 재담과 곁말로 대꾸해주는 잽이 노릇으로 시작했다. 재담의 흐름은 박삼쇠가 이끌어갔지만 뒷말은 이신통이 몇 번 맞춰보고는 이내 제 흥에 따라 즉석에서 지어내어 대꾸하니 습련 중인 놀이패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박삼쇠가 몇 번 맞춰보다가 신통에게 의견을 물었다.

원래 사설은 강담사 재담꾼이 잽이와 더불어 허튼소리로 주고받게 되지마는 산대놀이는 얘기 줄거리도 있고 여럿이 춤추고 노래하고 사설을 풀면서 놀지 않나? 창우도 남녀노소가 있어야 하고 악사도 희로애락에 따라 삼현육각은 필요하여 큰 명절에나 놀 수 있다네. 어찌 간단히 줄여서 한둘이 놀게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사당패의 꼭두각시가 있지 않소?

그야 인형 괴뢰를 놀리는 짓이라 탈판보다야 쉽겠지만 간단치는 않지.

혼자서 탈만 바꿔 쓰면 어떻겠소?

손발을 다 놀린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낸 것이 두 발에다 탈을 씌워 놀리고 양팔은 댓가지와 노끈으로 움직여 동작을 해보기로 하였다. 박삼쇠와 다른 놀이꾼이 나란히 판자로 엮은 의자에 누워 장막 밖으로 탈 씌운 발을 내밀고 움직이며 댓가지에 연결된 두 팔을 움직이니 놀이꾼이 직접 나가서 혼자 떠들고 동작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가 있었다. 이신통이 전기수 노릇하며 이야기 풀어내던 경험을 살려 사설 대본을 썼는데 중간에 잡가와 노래를 넣은 것은 박삼쇠의 의견이었다.

정월대보름에 사계축의 경연 놀이터는 청파 배다리 부근 덩굴내 모래밭에서 벌어졌고 석양 무렵에 아이들의 불놀이부터 시작하여 마른 볏짚을 장작 위에 더미로 얹어 달집을 태우면서 풍물패의 길놀이가 시작되었다. 마당 주위 곳곳마다 장대 끝에 횃불을 달아올리고 구경꾼들은 놀이판 주위에 둥글게 깔아둔 멍석 위에 자리잡고 앉았으며 미쳐 자리를 못 잡은 이들은 뒷전에 울을 치듯이 빽빽이 둘러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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