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휴직은 사실상 금기… 집에서 애 돌보려면 사표 쓰는 수밖에"
"갓난아이는 엄마가 집에서 직접 키우는 게 가장 좋다는 걸 누가 모르나요? 하지만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단 몇 개월도 내 손으로 아이 키우기가 힘든 상황이에요." 47개월, 10개월 된 두 자녀를 키우는 A(31)씨는 정부가 '만 0~2세 영아는 가정에서 양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속이 터진다.
A씨는 아이를 생후 1년만이라도 직접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육아휴직은 입 밖으로 꺼내기도 힘든 분위기. A씨의 직장은 이름만 들으면 아는 공기업인데도 그렇다. A씨는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 원래 직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당한다"며 "그러다 보니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여성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두 아이 모두 출산휴가 3개월만 겨우 썼다. 그나마 A씨는 운이 좋은 편. 친정 어머니가 함께 거주하며 아이들 양육을 맡아주고 있다. 그는 "직장 동료들은 애 봐줄 사람이 없어서 갓난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처음 보는 입주 육아도우미에게 맡기고 출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정부가 0~2세를 집에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은 안 갖춰주고 권장하기만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며 "정부 말대로 하려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외국계 회사를 다니는 B(30)씨는 퇴사를 결심했다. 첫째 아이 출산 예정일을 2주 앞두고 있는 B씨는 출산휴가 3개월이 끝나면 사표를 낼 계획. 업종 특성상 여성 직원이 많고 사원 복지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외국계 회사지만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직원은 드물다. B씨는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니까 육아휴직을 쓰려면 쓸 수도 있지만 복직하면 힘든 자리로 발령 나 어차피 회사를 오래 다니기 힘든 구조"라며 "차라리 그만 두고 1년이라도 마음 편히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3월부터 0~2세 전면 무상보육이 시행되면서 영아들이 어린이집에 대거 몰리자 관련 정부 부처들은 '0~2세는 집에서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새삼 강조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0~2세는 가정에서 키우고 보육시설 이용률은 30% 미만으로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만 2세까지가 부모와의 애착 관계 및 인격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엄마들도 사물도 분간 못하고 하루종일 잠만 자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에게는 말처럼 쉽지 않은 육아휴직이 0~2세 가정양육을 가로막는 일차적인 벽이 되고 있다.
최근 육아휴직률이 꾸준히 높아졌지만 여전히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부모가 대다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출산휴가를 이용한 여성은 총 9만290명인 반면 육아휴직을 이용한 부모는 5만8,137명뿐이었다. 단순히 계산하면 출산휴가자의 64.3%가 육아휴직을 이용한 것이지만 실제로 육아휴직은 6세 이하(공무원은 8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이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그 비율은 훨씬 낮아진다. A씨와 B씨처럼 공기업, 외국계기업조차 육아휴직 사용을 금기시해 아예 포기하는 엄마들이 많고, 사용한다 해도 복직 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지난해 어린이집을 이용한 만 0~2세 영아는 74만명으로 전체 영아(136만여명)의 약 54%다. 복지부의 2009년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0~2세 자녀를 둔 엄마 중 취업자는 약 30%여서 부모의 맞벌이 때문에 어린이집에 가는 영아는 약 40만명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무상보육 시행 후 시설 양육을 선택한 외벌이 부모도 많지만, 집에서 키우고 싶어도 영아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맞벌이 부모가 시설 이용자의 절반이 넘는 것이다.
반면 외국은 생후 12개월까지는 부모가 가정에서 기르도록 유도하는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출산 후 1년간 부모의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하고 휴직 전 받던 월급의 80% 정도까지 급여를 줘 경제적 부담 없이 휴직을 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어린이집도 최소 6개월, 1살부터 이용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남성만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일수를 별도로 지정해 남녀 모두에게 육아휴직 부담을 나누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육아휴직률도 낮지만 휴직자의 약 98%가 여성이며 급여도 월급의 40%(최대 100만원)만 지급되고 있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서영숙 교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들은 여럿이서 보육 교사 한 명의 관심을 받으려고 경쟁하다 보니 친구들에 대한 공격성이나 따돌림이 더 어린 나이부터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며 "부모들이 최소 1년만이라도 가정 보육을 할 수 있도록 육아휴직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등 사회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 비정규직·中企 근로자 "출산휴가 90일도 제대로 못 써"
육아휴직은커녕 출산휴가 3개월도 다 못 쓴 채 황급히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0~2세 가정양육은 말 그대로 먼 나라 일이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엄마들이다.
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 사용자 5만8,137명 중 300인 미만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3만2,416명(55.8%),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는 2만5,721명(44.2%)이었다. 300인 미만 기업이 약 7,000여명 정도 더 많이 사용했지만, 300인 미만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1,147만2,000명)가 300인 이상 대기업(231만2,000명)보다 5배나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육아휴직률은 훨씬 낮은 셈이다. 전체 근로자 대비 육아휴직률은 300인 미만 기업은 0.28%에 불과했지만 300인 이상은 이 보다 4배 높은 1.11%다. 고용부 관계자는 "10인 미만 기업은 대부분 취업규칙이 없는 상태이고, 취업규칙이 있더라도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은 모성 보호 관련 단체협약도 없어 육아휴직 활용률이 낮다"고 말했다.
또 업무를 대신해 줄 대체인력이 없어 산모의 몸과 갓난 아이를 돌볼 최소한의 기간인 출산휴가 90일도 다 쓰지 못한 채 두 달 만에 다시 회사에 나가는 근로자도 많다. 전체 노동자의 83%가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기본적인 양육권마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더 하다. 임신이나 출산한 여성 대부분이 계약이 연장되지 않아 일자리를 잃고 만다. 일자리가 없다고 안정적으로 자녀 가정양육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일수록 가구 소득이 낮은데다 새로 태어난 자녀의 양육비 부담까지 가중돼 출산 후에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바쁘다.
비정규직 여성들의 양육권을 보호하는 제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고용부는 임신 중이나 출산 휴가 중에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업주가 출산일로부터 1년 내 재고용하면 최대 540만원까지 지급하는 '임신ㆍ출산 후 계속고용지원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06년 시행 후 2010년 421명, 2011년 435명으로 수혜자가 꾸준히 늘고 있긴 하지만 전체 비정규직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다. 영세기업 근로자,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여성들에게는 최소 1년의 가정 양육조차도 허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은 근로자를 직접 지원하기보다 사업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사업주가 모성보호 제도 사용을 거부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 계획"이라며 "중소기업에 대한 육아휴직 장려금, 대체인력채용 장려금 인상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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