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 걸기 이벤트가 열린 5월 31일 백악관. '부시의 머리' 칼 로브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할 차례가 됐다. 대통령에서 물러나면 초상화가 백악관에 걸리는 관행을 빗대 오바마가 웃음기 없는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내 초상화를 너무 빨리 (백악관에) 걸려고 합니다." 로브도 물러서지 않았다. "대통령님,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사주간 타임이 최신호(13일자)에서 두 달 전 일화를 언급하며 공화당 선거전략가 칼 로브(61)가 귀환했다고 보도했다.
2007년 공화당 내부의 비난을 받으며 정치를 떠난 로브가 복귀한 계기는 기업 등이 슈퍼정치행동위원회(슈퍼팩)에 무제한 정치 자금을 대는 것을 허용한 대법원 판결이었다. 로브는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패한 이유를 자금 부족으로 판단하고 오바마 취임 직후부터 선거자금 모금방법을 구상했다. 이런 참에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로브는 슈퍼팩 '아메리칸 크로스로드'를 만들어 공화당 큰 손의 돈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 돈은 오바마 낙선 운동에 쓰이고 있다. 지난해 국가부채 논란과 관련해 2,000만달러를, 대선을 앞둔 올해는 지금까지 7,500만달러를 오바마 반대 광고에 집행했다. 11월 대선 때까지는 2억달러를,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의원 선거에는 1억달러를 집행할 계획이다. 로브는 대선이 접전 양상을 보이며 돈의 위력이 한층 커지자 상공회의소 등 보수단체 20여곳과 정기 모임을 열어 선거 상황과 정보를 제공하면서 반 오바마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롬니를 열렬히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로브는 롬니가 최근 해외 순방 중 말 실수를 연발하자 "유권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야 한다"고 비난했고 오바마 진영의 베인캐피털 의혹 제기와 관련해서는 롬니를 불평분자라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바마 잡기에 나선 이유는 정치영역에서 공화당의 지배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다. 타임은 로브를 "롬니에 버금가는 오바마의 호적수"라고 평가한 뒤 "로브의 작전이 성공하면 그는 공화당의 설계자에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타임은 부자들의 게임으로 전락한 미국 대선을 커버스토리로 해부하고 이번 대선 비용이 롬니 진영 13억5,00만달러, 오바마 진영 11억6,000만달러 등 역대 최대 규모인 2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의원 선거 비용 10억달러, 친보수단체 지원액 10억달러 등을 포함한 총선거비용은 58억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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