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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추경은 죄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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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추경은 죄악인가

입력
2012.08.0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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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부양이란 말에 부정적 이미지가 연상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워낙 오랜 기간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경험해왔고, 그 후유증에 우리 경제가 혹독히 시달려왔던 탓이다.

사실 옛 정권들은 성장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어떻게든 끌어올리려고 안달을 냈다. 금리를 낮추고, 예산을 다시 짜고(추경), 환율을 올리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정 급하면 건설경기에 불을 지피곤 했다. 선거를 앞뒀거나, 특히 정권 말이 되면 '경기부양 집착증'은 훨씬 강해졌다. 그 결과 경제엔 버블이 쌓이고 터지기를 반복했으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경기부양=나쁜 정책'이란 고정관념도 뿌리내리게 됐다.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는 이 점에서 과거 정권과는 좀 달랐다.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경제에 큰 무리를 주는 부양책은 별로 쓰질 않았다. 이명박정부의 경우 5년을 통틀어 보면 기조 자체는 부양 쪽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출범 6개월 만에 맞았던 리먼사태와 뒤이은 유럽재정위기에 대한 수습 차원이었다.

혹시 모르겠다. 만약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없었다면, 그래서 쓰고 싶은 정책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었다면 이명박정부가 어떤 스탠스를 취했을지 말이다. 애초 황당할 정도의 고성장 공약(747)을 내걸었고, 4대강 같은 토목사업에 심취했던, 압축성장시대를 풍미했던 건설사 회장 출신의 대통령이었던 만큼 '여건'이 허락했다면 '화끈한' 부양책들을 쏟아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불행히도(혹은 다행하게도) 그런 정책은 나오지 못했고, 7%을 외쳤던 현 정부는 3%도 버거운 상황에서 초라하게 임기를 끝내가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바로 지금이다. 경제가 빠르게 곤두박질치고 있는데도, 딱 부러진 부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정도면 추경편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 같은데, 정부는 오히려 균형재정만 얘기하고 있다. 대체 이명박정부의 '부양' 본색은 어디로 간 것일까. 국민들은 이 대통령을 기본적으로 성장론자로 알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균형론자로 바뀐 것일까.

사실 추경은 세금을 더 쓰거나 빚을 내는 것이어서, 가급적 안 하는 게 좋다. 더구나 절제 없는 재정지출로 유럽국가들이 겪는 재앙을 생각하면, 균형재정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추경이 죄악은 아니고, 균형재정도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정책이란 탄력성이 생명인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균형만 외친다면 재정정책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물론 정부는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실제로 얼마 전 주말 청와대 마라톤 회의를 통해 경제활성화 방안이 나왔는데, 납득할 수 없는 건 추경은 하지 않고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일부 완화한다는 대목이었다. 이는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개인들만 빚내서 집도 사고 소비를 하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경기부양의 짐을 정부는 지지 않고 개인들이 떠안으라는 얘기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어떤 희생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올 초 유류세 인하거부에서도 이미 드러났는데, 이쯤 되면 '참 이기적인 정부'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싶다.

현 예산은 애초 4% 육박하는 성장을 기대하고 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성장률이 3%도 위험한 상황이라면, 당초 예산에 변경을 주는 것(추경)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경제가 어려운데 '아무 것도 안 하는 정부'라는 이미지만 쌓이고 있다.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서먹한 사이는 세상이 다 아는데, 정부가 추경을 짠다 한들 '선거용'이란 비판이 나올 리도 없다. 통화정책도 실기의 연속이었는데, 재정정책마저 실기해선 정말 곤란하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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