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동에 사는 장태주(58)씨는 최근 저녁 식사를 마치면 생수 1병을 얼려 손에 들고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으로 '출근'을 한다. 더위를 피해 집에서 도망치듯이 나온 게 벌써 일주일 째다. 장씨는 "어젯밤도 더위에 숨이 막혀 한숨도 못 잤다"며 "자다가 하루에도 두 번씩 일어나 찬물을 끼얹어야 잠이 든다"고 말했다.
5일 밤 한강시민공원에는 장씨처럼 열대야를 피해 곳곳에 텐트를 치고 밤을 새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강공원 여의도안내센터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한강공원을 찾는 인원이 2배 가량 늘어, 평일에는 2만~3만명, 주말에는 평균 5만~10만명이 방문한다"고 귀띔했다. 그런데도 시민공원 상인들은 더위 때문에 오히려 장사를 망치고 있다. 3년째 한강에서 노점을 하고 있다는 김모(36)씨는 "심하게 더우면 물만 팔리고 쥐포, 소시지 같은 다른 간식은 안 팔린다"며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매출이 40% 정도 떨어졌다"고 고개를 저었다.
5일 새벽 서울의 최저 기온이 27.5도를 기록해 열대야 기준인 25도를 웃도는 열대야 현상이 지난달 27일부터 9일 연속 이어졌다. 이날 서울의 최고 기온은 36.7도로 전날에 이어 또 다시 올 여름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웠다. 1994년 이후 18년 만에 수은주가 가장 높이 올라 간 것이다. 역대 가장 높았던 서울의 최고 기온은 94년 7월 측정된 38.4도로, 이날 서울의 최고 기온은 관측 이래 여섯 번째로 높았다.
열대야 일수는 기록이 시작된 2000년 이후 지속일수가 가장 긴 것으로, 종전 기록은 2004년 8월 6일부터 7일간이었다. 2000년 이전에는 1994년에 14일 동안 서울의 하루 최저기온이 25도를 웃돌았던 비공식 기록이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6일 역시 최저 기온이 27도로 오늘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10일 연속 열대야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열대야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사고도 잇따랐다. 이날 오전 4시12분쯤 서울 상암동 난지한강공원 근처 한강에서 강모(43)씨가 "더워서 수영을 하겠다"며 물에 들어갔다가 빠져 나오지 못했다. 수난구조대에 의해 구조됐지만 의식이 없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저녁 9시쯤에는 서울 반포동 미도1차 아파트 단지의 500여 가구가 30여분간 정전됐고, 9시30분쯤에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600여 가구가 45분 가량 정전됐다. 전력 사용량 폭증이 원인이었다. 오후 10시쯤에는 노원구 하계동 장미아파트 1,880가구가 일시 정전됐으며, 대전 서구 관저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도 40여분간 전기 공급이 끊겼다.
관리업체 관계자는 "전력 사용이 늘어 과부하가 생기며 순간적으로 구내 설비 장치 쪽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이번 주에도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주말쯤에는 11호 태풍 '하이쿠이'의 영향으로 보름째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는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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