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 전원 끊자 2,3초후 비상발전기 가동… 감시단도 안심 표정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바닷가 옆으로 돔 4기가 우뚝 솟아 있다. 월성원자력발전소(원전) 1~4호기다.
이 가운데 1호기(67만9,000㎾급)는 고리원전 1호기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원전이다. 당시 지은 원전의 설계수명은 보통 30년. 월성1호기가 1983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했으니까, 이제 11월이면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당국은 수명연장을 통해 계속 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설계수명이란 원전이 기술적으로 천수를 다했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1차 가동허가기간이 끝났다는 뜻인 만큼, 부품교체와 손질을 통해 최소 10년은 더 가동해도 아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역주민, 반핵단체들은 안전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가동을 종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보안시설인 탓에 출입절차부터 까다롭다. 입구에서 한 차례, 월성 1,2호기의 전력공급을 담당하는 제1발전소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또 한 차례 신분확인이 이어졌다.
이날 폭염 속 경주의 낮 최고기온은 36도를 웃돌았다. 전국 최고기온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발전소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설비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토해내는 굉음이 뒤섞여 있었다. 인허가팀 선주형 차장은 "50도에 가까운 발전소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오히려 시원할 정도"라고 말했다.
월성1호기는 지난 6월23일부터 계획예방정비 중이었는데, 발전소 내부에서 작업 중이던 수십 명의 직원들은 옷과 얼굴 전체가 땀으로 흥건했다(정비는 7월29일 끝나 현재는 정상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비상디젤발전기. 정전으로 전원이 끊어질 경우 원전이 멈춰서는 것을 막아주는 핵심 장치다. 지난 2월 고리1호기 정전사고 때는 외부전력이 차단됐는데도 비상디젤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아 12분간 블랙아웃상태가 빚어졌다.
고리1호기의 '트라우마'때문이었을까. 작업자들은 비상디젤발전기를 포함한 설비 하나 하나를 유난히도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설비를 새롭게 설치하는 작업도 한창이었는데, 작업장에서 만난 최규태 차장은 "화재위험도분석용역, 즉 FHA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발전소 내 화재가 발생해 스프링클러가 작동할 경우 물이 발전소 안에 고이지 않도록 배수관을 새로 설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달 여간 이어진 계획예방정비 기간 동안 원자로를 포함해 비상디젤발전기, 기기냉각수펌프 전동기 등 총 83개 주요설비와 2,500여 개의 세부항목에 대한 점검작업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특히 이날은 원전운영을 감시하는 10여명의 민간환경감시기구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았다. 대부분 원전 인근 주민들이다. 한 팀은 발전소 심장부인 주제어실(MCR)로, 다른 한 팀은 비상디젤발전기실로 향했다.
오후 3시가 다가오자 주제어실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KINS)과 감시기구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그 동안 점검했던 비상디젤발전기 등 발전소 내 모든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시간이다. 원전안전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감시기구 사람들 앞에서 만에 하나라도 에러가 생긴다면, 설계수명 연장은 물론 재가동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
정전상황에 대처하는 시험이 시작됐다. '5 4 3 2 1….'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외부전원을 강제 차단시키자 주제어실을 포함한 발전소 전체에 정전이 발생, 순간 암흑천지로 변했다. 하지만 2~3초가 지나자 즉시 전원공급이 재개됐다. 일반 자동차 디젤 엔진보다 약 100배 가까운 굉음을 내며 비상디젤발전기가 자동적으로 가동된 것이다. 이승호 1발전소장은 "불이 꺼졌다 다시 켜졌다는 건 비상디젤발전기가 정상 작동했다는 뜻"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정말로 피가 다 마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원자로, 터빈, 연료, 전기설비 등이 정상적으로 기동됐다는 현장의 무전보고가 속속 주제어실로 들어왔다. 외부전원이 차단된 뒤 발전소 내 모든 설비가 다시 가동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3분이 되지 않았다.
주제어실에서 이를 지켜본 배칠용 민간환경감시기구 부위원장은 "일부 주민들이 원전 안전성에 대해 여전히 우려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계속 운전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잔뜩 긴장했던 월성1호기 직원들의 얼굴은 그제서야 밝아지기 시작했다.
경주=글ㆍ사진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 이청구 월성원전 본부장
"원전에서만큼은 100 마이너스 1은 99가 아닙니다. 제로입니다."
이청구(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전 본부장이 밝힌 원전운영과 관리의 '제1원칙'이다.
이 본부장은 "백 번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그 동안 힘들게 쌓아왔던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어느 한 장소에 휴지가 하나 버려져 있는데 아무도 줍지 않고 지나치면 그곳은 나중에 또 다른 쓰레기가 금새 쌓여 폐허로 변할 수 있다"고 비유한 뒤 "직원들에게 '아주 작은 것이라도 흘려 버리지 말고 끝까지 정확하게 검사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늘 주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 및 은폐사건을 계기로 국내 원전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는 터라, 이 본부장을 비롯한 이곳 직원들은 안전에 관한 한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원전 지역주민들은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굳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고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핵시설을 내 집 근처에 두고 있다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더구나 월성1호기는 지은 지 30년이나 된 이른바 '노후원전'이라, 이곳 주민들의 우려는 고리1호기 주변 주민들에 못지 않다.
이 본부장은 이런 주민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안전에는 문제가 없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같은 국제공인기구도 이를 인정한 만큼, 주민들이 믿어줄 것을 호소했다. 이 본부장은 "지역주민들과 자주 만나고 전화하면서 원전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투명하게 설명드리고 있다"면서 "처음엔 강하게 반대했던 주민들도 이젠 조금씩 이해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월성본부는 최근 최양식 경주시장 등 지역 기관장과 이상기 경주핵안전연대 공동대표를 초청해 원전현안을 설명하는 등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설령 이번 폭염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우리나라의 전력수급은 매우 빠듯한 상황. 발전소 하나라도 더 돌려야 할 형편인데,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원전을 설계수명을 이유로 중단한다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라는 게 한수원의 입장이다. 이 본부장은 "한달 넘게 계획예방정비를 진행한 결과 전체설비가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계속 운전 승인 여부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만큼 (우리는) 설비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해 나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경주=김종한기자 tellme@hk.co.kr
■ 비상냉각수 주입·지진 자동정비… 후쿠시마 거울 삼아 대대적 안전 보완
월성1호기는 11월 설계수명종료에 대비, 계속 운전을 위해 오래 전부터 정비와 보완을 거듭해왔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정비의 강도를 한층 높였다.
우선 ▦고장사례 분석결과 예방정비 프로그램 반영 ▦지진 자동정비설비 설치 ▦원자로 비상냉각수 외부 주입유로 설치 등 총 23건의 안전 강화대책을 추진했거나 할 예정이다. 또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수소 폭발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수소를 제거하는 수소제어설비(PAR)도 새로 설치하는 한편, 전체 전원상실에 대비해 이동형 비상디젤발전기 등도 구축하고 있다.
중대사고관리지침서(SAMG)를 개정하는 등 비상대응능력 강화훈련도 빼 놓지 않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오는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격납건물 수소감시기 설치 ▦침수대비 내진 설계된 방수문 및 방수형 배수펌프 설치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월성1호기의 안전성은 이미 검증된 상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6월 월성1호기의 안전점검을 벌인 결과 "광범위한 설비개선작업을 통해 발전소가 매우 우수한 상태"라고 평했다. 또 지난 2003년 실시한 주기적안전성평가(PSR)의 후속조치로 27개월간의 대규모 설비개선 공사를 통해 압력관 등 주요부품을 교체하고 열 전달 및 내부부식 저항 수준을 대폭 강화했다. 2009년엔 안전계통 설비개선, 경년열화(운전연수 경과에 따른 설비상태) 등 총 179건의 설비개선을 진행한 바 있다. 김종만 월성원전 제1발전소 설비개선실장은 "한치의 불안감도 없도록 안전강화수위를 점점 더 높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