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지막 한발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2위 진종오(33·KT)와의 격차는 1.6점. 이변이 없는 한 금메달이 손에 잡히는 듯 했다. 모든 시선은 사로 맨 왼쪽에 서 있는 최영래(30∙경기도청)에게 쏠렸다. 최영래는 지름 3.5㎝ 표적지를 향해 정조준했고, 사격 신호가 울리자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전광판에 나타난 점수는 8.1점.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던 최영래는 총을 내려 놓은 뒤 아쉬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반면 2위에 자리했던 진종오는 10.2점을 쐈다. 순위표 맨 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최영래는 진종오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내려앉았다. 최영래로서는 통한의 한발이었다.
세계 랭킹 55위인 최영래가 5일(한국시간) 런던 그리니치파크의 왕립 포병대 기지 사격장에서 열린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최종 합계 661.5점을 기록해 662점을 올린 진종오에 밀려 은메달을 획득했다. 예선에서 600점 만점에 569점을 쏴 본선 상위 8명이 겨루는 결선을 1위로 통과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최영래는 국제무대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다. 2002년에 국가대표 후보 선수 명단에 포함됐을 뿐 태극 마크와 인연은 없었다. 최영래는 2010년 한화회장배 전국대회 공기권총에서 진종오의 대회 3연속 우승을 저지하며 그 해 하반기에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뽑혔다. 이듬해에는 후배 이대명(24∙경기도청)과 한솥밥을 먹으며 사격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선의의 경쟁을 펼쳐 기량을 더 끌어올렸다. 꾸준한 상승세를 보인 최영래는 올해 런던올림픽 사격 대표팀에 선발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총을 잡은 지 14년 만인 30대의 나이에 그토록 원하던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 것이다.
최영래는 그러나 결전의 땅인 런던으로 떠나기 불과 2주일 앞두고 종기가 생긴 탓에 급작스러운 수술을 받아야 했다. 제대로 서서 훈련을 하기 힘든 상태라 이대명과의 엔트리 교체설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최영래의 의지는 확고했다. 어떻게든 올림픽에 출전해 총을 쏘겠다며 예정대로 출국길에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에 나선 최영래는 '무명 신화'를 쓸 뻔했지만 마지막 한발로 메달 색이 금에서 은으로 바뀌었다. 아쉬움을 숨길 수 없었으나 최영래는 시상대에 올라설 때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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