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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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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91>

입력
2012.08.0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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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축이란 돈의문 밖 경기감영 부근의 애오개에서 서소문 일대와 만리재를 거쳐서 배다리의 청파에 이르는 지역을 말하는데, 이들 언저리의 수공업자들이며 장사치들 그리고 성 밖에서 채마밭을 일구어 문안에 들이는 농민들이 절기마다 패를 모아 놀던 데서 사계축패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각 동네마다 재간이 뛰어나고 흥이 과한 자들이 있기 마련이라 서로 이름을 걸고 기량을 다투었다. 특히 청파는 그중에 으뜸이던 것이 용산 삼개와 마포 동막에서 들어오는 삼남의 물산을 거래하여 부자가 된 이들이 많아서 북촌처럼 기와집이 빼곡 들어차 있을 정도였다. 이들은 인왕산 아랫녘의 아전 출신 중인들처럼 시 서화를 들추며 양반 흉내를 내려 하지 않았고 가곡 가사 시조에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각종 흥겨운 잡가를 즐겨하여 저들의 윗대와 구별하여 아랫대라고 불렸다.

아무튼 이신통이 서소문 근처 칠패가 시작되는 언저리의 어느 선술집에서 박삼쇠를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박은 만리재 아래에 있던 공청으로 쓰는 파 움막에서 정월대보름놀이에 선보일 소리와 마당 판을 연습하고 뒤풀이 겸하여 패거리 몇 사람과 술 한잔 걸치려던 참이었다. 이신통이 먼저 와서 혼자 화로 앞에 서서 청어 비웃구이를 안주로 잔술을 사먹고 있었다. 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신통의 양옆으로 비집고 들어서더니 제각기 술을 시키고 너비아니요, 저냐요, 하면서 소란을 떨었다. 바로 그의 옆에 들어선 이가 박삼쇠였는데 그래도 나잇값을 한다고 먼저 온 이신통을 밀어내는 양이 되자 미안했던지 일행을 나무라는 것이었다.

아, 이 사람들아 먼저 오신 손님도 기신데 이 무슨 소동이여?

선술집이라 하는 것이 길 밖으로 낸 방 안쪽에 화덕을 세우고 바깥에는 좌판을 늘어놓고 즉석에서 안줏거리를 요리하여 잔술과 내는 법이라 화덕 앞에 서서 먹어야 제 맛인 셈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이 먼저 온 사람들은 안주와 술을 챙겨서 곁의 툇마루나 평상으로 후퇴하거나 다시 안주를 시키며 앞자리에서 버티는 것이다. 신통이 안주 얹은 접시와 막걸리 담긴 대접을 들고 뒤로 물러서려는데, 박이 그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허, 술잔이야 한 손으로 받아 마실 수 있으니 모로 서서 마십시다. 날씨두 춘데 잘됐지 뭐요?

이신통은 그 말이 재미있어서 얼결에 모로 서서 술잔을 들어 마셨고, 박삼쇠가 그를 지켜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어라 낯이 익은데…… 내가 어디서 봤더라? 여보 댁은 날 본 적 없우?

신통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센둥이가 검둥이요, 검둥이가 센둥이올시다.

상여 메는 놈이 가마 메는 놈이다, 그럼 댁두 놀량패여?

하다가 박은 자기 이마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고는 말했다.

당신 광통교서 얘기책 읽는 이 아녀?

예, 이곳저곳 싸다니며 읽었지요.

그는 반가웠는지 신통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일행을 향하여 떠들었다.

장풍운이 사라진 뒤에 신통방통이란 말이 운종가에 돌았다네. 그게 이 사람이여!

이름 팔짜가 있나 보이. 풍운이는 주독에 풍 맞고 과천으루 내려갔다지.

그 자식이 색향이라 평양 가서 과하게 오입했든 게지.

애오개 놀량패들은 한마디씩 아는 체를 하는데 박삼쇠가 신통에 물었다.

나 박삼쇠라구 하는데…… 이녁은 성명이 어찌 되오?

저는 이신통입니다.

주위에서 왁짜하는 웃음소리가 일어나며 모두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거 이름자두 아주 맘 먹구 지었네!

합죽이 오물음은 우리 할애비 시절이고……

신통방통 이신통, 장단 좋고!

박삼쇠가 얼른 술 한 잔씩 시켜서 신통에게 내밀어주며 말했다.

우리 패에 재담꾼이 없어서 말 대가리에 쇠뿔이더니, 이제야 판이 걸찍하겠구먼. 이 동네 살우?

예 저어기 쌍버드낭구 집이우.

박삼쇠는 신통이 깜짝 놀랄 정도로 등판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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