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전공 초빙교수가 이번엔 '오뚝이 과학자'라며 권세진(54)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를 추천했다.
나라도 참 힘들었을 거다. 2003년. 권세진 교수에게 그 해는 잊지 못할 힘든 시기였다. 그해 5월이었다. 카이스트 안에 있는 풍동실험실에서 폭발사고가 났다. 권 교수 연구실에 있던 학생 두 명이 이곳에서 과산화수소 촉매 반응실험을 하던 중이었다. 이 사고로 한 명은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한 명은 크게 다쳤다. 지도교수였던 그 역시 크게 상심했을 터.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권 교수 연구실은 해외에서 먼저 수준급 로켓 기술을 보유한 곳으로 꼽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학생과 스스로를 잘 다독이며 힘든 시기를 넘긴 덕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로켓을 좋아했다. 19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본 게 과학자의 꿈을 키운 결정적 계기가 됐단다. 그래선지 유독 달과 관련한 것들을 개발했다.
권 교수는 2007년 달 착륙선을 순수 국내기술로 만들었다. 이 탐사선의 무게는 25㎏, 높이와 폭은 각각 40㎝. 달 표면에 20㎏ 넘는 물체를 착륙시킬 수 있다. 달 착륙선은 로켓처럼 미국, 러시아 등 우주 선진국들이 기술 이전을 꺼리는 우주 분야의 핵심 기술이다.
달나라를 동경한 '아폴로 키드'는 3년 뒤 달 탐사선이 지구와 달 사이를 여행할 액체로켓 엔진도 개발에 성공했다. 이 로켓의 이름은 LKR-1. 길이 21㎝, 무게는 1.8㎏이다. 과산화수소를 연료로 쓰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개발비용도 기존 로켓의 30~40% 수준. 가령 미국 로켓은 독성이 강한 발암물질 '하이드라진'을 써 연소 부산물을 정화하는 시설을 만드는 데만 1,000억원 넘게 든다.
나도 로켓연구에 평생을 몸 바친 사람이지만, 그래도 난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꽤 안정적으로 연구를 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지금이야 나로호 쏘고, 2021년까지 국산 기술로 만든 한국형발사체(KSLV-Ⅱ)도 올린다고 하지만 사실 한국은 로켓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불과 4, 5년 전 달 탐사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때도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에서 박태환, 김연아 선수가 기린아처럼 나타나 국내 수준을 한껏 끌어올렸듯, 로켓 개발도 권 교수 같은 '무모한 과학자'가 있었기에 이만큼이나 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근래에 권 교수와 나는 수소 비행기를 연구하고 있다. 말 그대로 수소를 연료로 나는 비행기다. 수소는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고, 무해하다는 장점이 있다. 우린 20, 30년 뒤엔 수소 비행기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수소 연료화 부분은 아직까지 풀어야 할 숙제다. 한참 후배이지만 권 교수는 그런 면에서 내가 참 존경하는 사람이다. '안 된다'고 먼저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되게 만들지 궁리하는 그 자세가 내게 귀감이 된다.
정리=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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