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8일(한국시간) 개막한 2012 런던올림픽이 잇단 오심과 져주기 논란 등으로 얼룩진 가운데 인종과 편견, 나이를 뛰어 넘는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플레이가 나오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올림픽이 페어 플레이를 통한 승자를 가리는 대회지만 대중은 승자에게만 박수 갈채를 보내지 않는다. 기록이 형편 없더라도 4년 간 갈고 닦은 기량을 모두 쏟아 부었다면 비록 꼴찌로 들어오더라도 아낌 없이 박수를 보낸다. 바로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서 살아 있는 올림픽 정신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2000년 시드니대회 때의 '꼴찌 영웅' 에릭 무삼바니(적도기니)다. 무삼바니는 남자 수영 자유형 100m에 출전했지만 다른 선수들이 다 터치패드를 찍은 한참 후에야 개헤엄으로 경기를 마치며 감동을 연출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무삼바니처럼 올림픽 정신과 오버랩 되는 인간 드라마를 써 내려간 선수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의 케일러 해리슨(22)은 3일 여자 유도 78㎏급 결승에서 영국의 제마 기븐스에게 유효 두 개를 따내며 정상에 올랐다. 미국 올림픽 유도 사상 남녀를 통틀어 첫 금메달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반전 드라마였다.
여섯 살 때 유도 도복을 입은 해리슨은 2010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유도 선수로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0대 때 자신을 지도하던 코치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고 3년간 말을 하지 못했다. 심각한 후유증을 겪은 해리슨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결국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은 경우도 있다. 총 9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는 여자 체조는 러시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 즉 백인의 전유물이었다. 이전 대회까지 흑인이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하얀 매트 위에서 검은 선수가 연기하는 건 여전히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가브리엘 더글라스(17)는 3일 런던 노스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열린 기계체조 여자 개인 종합에서 정상에 오르며 주위의 편견을 깼다. 특히 지난 1일 단체전에 이어 2관왕을 차지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통통 튀는 탄력과 스피드에 정교함까지 갖춘 더글라스는 요정 같은 백인 선수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체조 여왕' 계보에 유색인종으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남겼다.
한국에도 세월을 거슬러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건 유도의 송대남(33)이 있다. 불굴의 정신력을 앞세운 송대남은 2일 엑셀 런던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유도 90㎏급 결승에서 아슬레이 곤살레스(쿠바)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유도선수로서 이미 '환갑'을 넘은 나이였다.
한때 81㎏급 세계랭킹 1위를 달리다가 2010년 11월 오른 무릎 수술을 받고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올림픽 무대를 위해 고통스러운 재활을 견뎌냈고 90㎏급으로 체급을 바꿔 아무도 예상 못한 '금빛 메치기'를 완성했다.
64년 만에 런던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은 운영 미숙과 오심 논란 등으로 무수한 뒷말을 남기고 있지만 작은 영웅들이 써내려 가는 각본 없는 인간 드라마가 올림픽 정신을 지켜 내고 있다.
런던=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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