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이름값을 조금 했나 봅니다.”
기보배(24ㆍ광주광역시청)가 3일(한국시간) 새벽 런던올림픽 양궁 여자개인전 결승전에서 금빛 과녁을 명중시키고 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보배는 그러면서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정말 선배님들에게 죄송스러웠다”면서 “이제야 당당하게 선배들 앞에 설 수 있게 됐고 그 점이 금메달을 딴 것보다 더 기쁘다”고 울먹거렸다. 단체전 우승과 함께 2관왕에 오른 기보배가 ‘토리노의 굴욕’을 씻어냈다. 기보배는 2010년 국가대표가 된 뒤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기대를 모았다. 자신의 이름처럼 한국 양궁의 ‘보배’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번번이 메이저 대회에서 좌절해 마음 고생이 심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8강전 탈락에 이어 지난해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중도하차는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대표팀 에이스로 금메달은 ‘떼어 논 당상’이라는 자신감으로 출전했으나 32강전에서도 살아남지 못한 것. 한국 양궁은 결국 세계선수권대회 30년 만에 개인전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양궁계 안팎에서 섣부른 세대교체라며 비난의 화살이 날아왔다. 하지만 기보배는 런던올림픽 금메달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기보배는 함께 한 선배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성진 언니가 8강에서 떨어지고 나서 나를 찾아왔다. 얼굴에 눈물자국도 보였고 속이 많이 상했을 텐데도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성진 언니에게 ‘난 자신 있다’고 말했다. 금메달 따고도 내가 우니까 언니가 ‘축하한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오늘 흘리는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다. 다만 함께 고생해온 팀원들 생각하면 나 혼자만 메달을 따서 아쉽고 미안한 감정이 북받친다”고 말했다.
기보배는 대표팀 막내였지만 선배들보다 자기 암시력이 뛰어났다. 허리춤에 늘 ‘내 자신을 믿고 쏘자’, ‘바람 그까짓 것 이길 수 있다’ 등의 메모카드를 달고 활을 쏠 정도다.
기보배는 이어 “지금까지 욕심 탓에 큰 경기를 자주 그르쳤다”라며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도 욕심을 비우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기보배의 이날 승리는 기적처럼 다가왔다. 아이다 로만(멕시코)과 5-5 연장 승부전. 마지막 한 방으로 금메달이 결정되는 순간 기보배와 로만의 화살은 모두 8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기보배는 9점에 가까운 8점이었고, 상대는 7점에 가까운 8점이었다. 기보배는 “로만이 마지막 화살을 쏘는 모습을 차마 보지를 못했다. 너무 긴장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이런 상황인데 한국에서 경기를 보고 계시는 국민들께서는 얼마나 더 깜짝 놀라셨겠느냐”라며 활짝 웃었다.
런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