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15년(1815년) 12월, 나주사람 김점룡과 한 여인이 숯덩이가 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는 전날 밤 친구의 집에 찾아와 빈 방을 빌렸고, 그가 불을 때는 동안 여인 하나가 쏜살같이 방에 들어갔다. 다음날 그 방에서는 해가 중천에 뜨도록 인기척이 없는 채 연기가 새어 나오고 창호지 창문이 흠뻑 젖어 있었다. 방 안에는 남녀가 껴안고 누운 형상의 커다란 숯덩이 두 개가 남아 있었다.
■ 검험관(檢驗官ㆍ요샛말로 법의학자) 등은 오랜 검토 끝에 이 괴이한 사건이 음화(淫火)에 의한 사망사건이라고 결론 지었다. 김점룡은 17년 전 옆 마을의 처녀를 보자마자 온몸이 불덩이처럼 끓는 상사병에 걸렸으나 맺어질 수 없었다. 그 뒤 장가들어 3남 2녀를 낳고 아내와 금실 좋게 살았지만 도저히 그녀를 잊을 수 없었던 그는 그녀가 과부가 되자 우렁각시처럼 몰래 돕다가 결국 그녀와 함께 죽은 것이다. 조선 후기 살인사건 처리 지침서라 할 만한 정약용의 <흠흠신서(欽欽新書)> 에 나온다. 흠흠신서(欽欽新書)>
■ 불가에서는 사람을 태우는 불을 욕화(慾火)라고 부른다고 한다. 음탕한 교접은 서로 문지르는 데에서 발생하고, 문지르기가 극도에 이르면 욕화가 세차게 일고 갑자기 불꽃이 번져 스스로 타버리게 된다. 사람의 심장과 장기에는 동물의 기름과 같은 황고(黃膏)가 있는데, 정욕이 치솟아 남녀의 몸이 극도에 이르면 황고에서 불이 나 장기를 태워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배와 허리 쪽이 집중적으로 정염의 불에 탄 데 비해 두 사람의 다리가 별로 타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결론이었다.
■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너를 생각했지/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이 세상에 없어/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의 시처럼 그저 생각만 하면 사건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그런가? 1926년 8월 4일, 극작가 김우진과 소프라노 윤심덕이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한날 한시에 태어나진 못했지만 한날 한시에 그들은 갔다. 사랑이나 정욕은 이렇게 무섭다. 심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자신과 상대를 태우고 가족과 집안까지 태운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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