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은 무더운 도시다. 나는 매년 여름 동료들과 함께 공연을 하러 밀양을 찾는다. 올해도 폭염의 절정 속에, 나는 밀양 연극촌에서 한 나절을 보낸다.
여름은 당연히 더워야 하지만 올해 더위는 심상치 않다. 그러나 이 무더위 속에도 사람들은 극장을 찾아와 연극을 본다. 연극은 언제나 공간과 환경에 주눅 들지 않고 휴식과 위안을 주고, 또 세상에 대해 자기 발언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런 연극에 귀 기울여 주고 기꺼이 사랑해준다.
물론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연극들도 있고 관객을 졸게 만드는 연극도 있다. 모두가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취향 차이 일 것이다.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무더위 속에 나는 한가해졌다. 슬리퍼를 신고 연꽃 단지를 거닐기도 하고 농로 수로에 발을 담그기도 해 본다.
어디선가 황소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몇 년 전부터 토종 청개구리는 점점 보이지 않고 황소개구리만 늘어났다. 도시나 농촌이나 원래의 우리 것은 점점 사라져간다.
눈에 보이는 것이 사라지고 변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우리네 어르신들이 지니고 살았던 우리 정서가 없어지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래도 날은 덥고 심심하다.
하늘에 구름은 빠르게 달려간다. 문뜩 '권태'라는 수필을 쓴 우리들의 시인 이상을 생각해 본다. 사는 것이 얼마나 권태로우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더위를 피해 빈 방에 들어가 매미 소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다.
한 때, 청춘의 혈기 하나로 조국해방과 유혈혁명의 깃발을 흔들던 어떤 분이, 최근 중국에서 피치 못할 일에 연루되어 100일이 넘게 감금 되었다가 석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분이 그곳 감방에서 전기고문을 당했다는 얘기가 신문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왕년에 강철보다 뜨거운 심장을 지닌 이 혁명가도 이젠 한 물 갔구나. 중국이 세계와 함께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그깟 고문 좀 당했다고 우리의 애국혁명가가 참으로 쪼잔하게 세계경제의 중심국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다니. 북한 동포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 훌륭한 애국자가 왜 남한의 국격에 금이 가는 언행을 하는 것이 의아하기만 하다. 다 알다시피 고문과 인권유린은 산업화의 어쩔 수 없는 과정 아니던가. 이 나라 대한민국이 피 땀 흘려 거쳐 간 산업화의 필연적인, 필수코스 과정인 고문의 개념을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다니.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뜨거운 쌀밥을 먹여주시고 세계만방에 한강의 기적을 보여주신, 대한민국을 거창하게 산업화하신, 비운에 돌아가신 각하의 따님이 이 일을 아시면 어찌 생각할지 궁금할 뿐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이 있다.
절차의 문제점과 도덕적 흠결로 인해 논쟁은 멈추질 않고 해결점은 보이질 않는다. 화해와 타협점은 안 보이고 분열과 대결의 국면까지 달려가고 있다. 겨우 하나가 되었는데 그 하나가 다시 둘 셋으로 갈라지려 한다.
그들의 다툼으로 많은 사람들이 상실감에 빠졌다. 슬픈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는 그 두 명의 국회의원들을 국회에서 자격심사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누가 누구를 심사한단 말인가.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을 국회의원 자신들이 심사하겠다니.
나는 그들의 그 불온한 의도를 이미 눈치 채고 있다. 오만불손한 의원들은 처음엔 동료 의원 몇 명을 자격심사라는 명분으로 제명시킨 뒤 결국엔 MB에 대한 자격심사를 하려고 들 거다. 갖은 이유를 들어 4대강 업적은 물론이고, 친인척 측근 비리도 물어 뜯을 거며 심지어 G20 행사며 도곡동 사저 사건 등등. MB의 4년 동안의 모든 행적에 메스를 들이대고 치적을 깎아 내릴 것이다. MB는 이를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참고 있는 걸까. 이걸 모른다면 인의 장막 속에 갇혀있는 불쌍한 분이고 후자라면 참 인내심도 많은 분이다. 밀양은 정말 무더운 도시다. 나는 더위 먹었다.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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